음모·배신·독재·쿠데타·탈주…. 소설에나 어울리는 이런 스토리로 가득한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 자동차기업 닛산자동차이죠. 25년 만에 최대 규모 적자를 내며 휘청거리고 있는 닛산. 그 추락의 기원을 따져보니 파벌 싸움과 내부 총질이 끊이지 않는 취약한 조직문화가 드러나는데요. ‘기술의 닛산’을 망가뜨린 분열과 암투의 역사를 들여다보겠습니다.
한때는 일본 2위, 지금은 3위의 자동차 제조사 닛산자동차. 대규모 적자로 또다시 경영 위기에 빠졌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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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일본 요코하마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 이반 에스피노사 닛산자동차 사장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합니다. 생산시설 7곳을 폐쇄하고(17곳→10곳), 총 2만명 인력(전체 직원의 15%)을 감축한다는 계획이죠. 지난해 무려 6709억엔(6조4000억원)의 엄청난 순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이반 에스피노사 닛산 CEO가 5월 13일 2024년 실적과 함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닛산의 이번 구조조정 계획엔 ‘Re:Nissan’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1999년 카를로스 곤이 발표했던 ‘닛산 리바이벌 플랜’을 떠올리게 하는 명칭이다. 닛산 제공
비슷한 멜로디가 반복되는 건 우연일까요. 언뜻 보면 지금 닛산의 위기는 경영 실책+외부 환경의 변화(트럼프 관세 등) 탓으로 보이지만요. 닛산자동차 역사를 좀 더 길게 보면, 이건 결국 닛산의 폐습 내지 고질병과 맥이 닿아있습니다. 극심한 파벌 갈등이 그것이죠.
하지만 주인이 없을 뿐이지 주인 행세하는 권력자가 없는 건 아니었죠. 1960~70년대 이 기업엔 ‘닛산의 천황’으로 불리던 독재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닛산의 회장도, 사장도, 심지어 임원도 아니었죠. 닛산의 노조위원장(자동차노련 회장) 시오지 이치로(塩路一郎)였습니다.
1973년 도쿄모터쇼에서 선보인 닛산 스카이라인 2000GT. 닛산은 1966년 스카이라인을 생산하던 프린스자동차와 합병했다. 프린스의 우수한 엔지니어를 대거 영입하면서 닛산은 ‘기술의 닛산’으로 불리게 된다. 닛산 홈페이지
이 시기 닛산은 도요타에 이은 일본 자동차 업계 2위 기업으로 잘 나갔습니다. 프린스자동차의 우수한 엔지니어를 영입하면서 ‘기술의 닛산’이란 별칭도 얻었고요. 하지만 분명 노조의 경영 관여는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생산성 저하의 큰 원인으로 지목됐죠. 자연히 이에 대항한 반대파가 고개를 들게 됩니다.
1977년 취임한 이시하라 슌(石原俊) 사장은 ‘글로벌 10’ 전략을 발표합니다. 세계 시장 점유율 10% 달성 목표를 위해 미국과 영국에 생산 거점을 대폭 늘리겠단 야심 찬 계획이었죠. 국내 고용 타격을 우려한 시오지 위원장은 이에 “파업을 불사한다”고 으름장 놓으며 강하게 반발합니다. 조직이 회장파(가와마타 회장+시오지 위원장)와 사장파(이시하라 사장)로 완전히 쪼개졌고요. 둘 사이 극한 대립이 이어집니다.
파벌 갈등이 극에 달했던 1984년. 한 주간지에 시오지 위원장의 여성스캔들 기사가 게재됩니다. 호화요트에서 내연녀와 밀회를 즐기는 사진이 실렸죠. 이 사진을 찍은 건 시오지의 사생활을 캐온 닛산 홍보부 직원. 이를 계기로 현장 직원의 신망을 잃은 시오지는 급격히 힘이 빠졌고요. 결국 1986년 물러납니다. 이시하라 사장이 굳건했던 시오지의 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겁니다. 정면 대결이 아닌 권모술수를 이용해서 말이죠.
하지만 이시하라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가타야마를 귀국시킵니다. 압도적인 성과를 올리는 가타야마를 라이벌로 의식했기 때문이죠. 이어 1982년 가타야마가 애써 키워놓은 닷선 브랜드마저 없애고 닛산으로 통일합니다. 미국에선 닷선이 훨씬 더 인지도가 높았는데도 말이죠.
1960~70년대 닛산의 미국 수출 붐을 이끈 일등공신인 가타야마 유카타 미국 닛산 사장(오른쪽에서 두번째). 미국에서 딜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일본차가 ‘듣보잡’ 취급을 받던 시절, 세심한 서비스로 현지 딜러와 고객들 마음을 사로잡아 ‘닷선’을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입차 브랜드로 만들었다. 경영능력이 뛰어나고 인품도 훌륭할 뿐 아니라, 닛산 창업자 아유카와와도 친척 관계였다. 이런 점이 오히려 그를 견제받게 만들었다. 닛산 홈페이지
1999년 닛산이 끌어안고 있던 부채는 무려 2조엔. 그해 6844억엔이라는 역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합니다. 닛산은 진짜로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죠. 그 닛산을 구한 건 르노의 자본 제휴(36.8%)였습니다. 그리고 르노로부터 닛산 재건의 임무를 부여받고 투입된 사람이 바로 카를로스 곤이었죠.
사실 카를로스 곤의 경영방식에 대해선 다양한 평가가 나옵니다. 일본인이라면 차마 할 수 없는 과감한 칼질로 죽어가던 닛산을 기적적으로 되살린 건 분명하고요. 2010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 ‘리프’를 출시하며 전기차 기술 혁신에도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재무제표 숫자에만 집착해 장기 성장성을 훼손했단 비판도 많죠. 원가 절감과 매출 확대에 너무 몰두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차량 품질과 브랜드 이미지를 떨어뜨렸다는 건데요. 이 점에선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설적인 CEO 잭 웰치와 비슷하단 평가도 받습니다.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차 ‘리프’ 출시 행사장에 참석한 카를로스 곤 당시 닛산자동차 CEO(맨 왼쪽). 카를로스 곤은 취임 직후 닛산의 전기차 개발팀을 해체시켰지만, 2007년 다시 멤버들을 소집해 “프리우스와의 정면 승부다”라며 3년 안에 전기차를 개발해 출시하라고 지시한다. 배터리부터 새로 만들어야 하는 ‘맨땅에 헤딩’이라 매우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놀랍게도 닛산 엔지니어들은 이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시켰다. 동아일보 DB
문제는 독재체제가 너무 길어지면서 점점 카를로스 곤의 장악력에도 그늘이 생겼단 겁니다. 닛산과 르노, 두 기업 회장을 겸임하며 바빠진 뒤로 곤은 닛산의 돌아가는 상황을 세세하게 들여다보진 못했고요. 임원들은 회장에게 보고하기 좋게 ‘겉보기 숫자를 만드는’ 일에만 연연하게 됩니다. 자기네 부서 수치를 돋보이게 하느라 다른 부서 뒷다리를 잡는 일이 반복됐죠. 다시 조직엔 분열이 싹텄고, 본업보단 사내 정치가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2018년 11월, 상층부의 균열이 예기치 못한 극단적인 형태로 터져 나옵니다. 카를로스 곤 회장이 도쿄지방검찰청에 의해 전격 체포된 겁니다. 혐의는 금융상품거래법 위반. 자신의 보수를 축소 신고하고,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해서 해외에 부동산을 샀다는 건데요. 닛산의 내부 고발이 검찰을 움직였습니다.
고발자는 금세 드러났죠. 체포 당일 밤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 닛산 사장이 단독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부정행위”라고 발표합니다. 곤이 아끼던 ‘곤 칠드런’ 대표주자가 일으킨 쿠데타였습니다.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은 2010~2014년 자신의 보수를 실제보다 50억엔 적게 기재하고, 부동산과 요트 등을 회사 돈으로 산 혐의로 일본 검찰에 체포됐다. 곤 회장 측은 혐의 내용 자체는 사실이지만 이는 모두 회사 경영진들과 사전 상의해서 진행한 거라 문제 없다고 주장한다. 브라질에서 태어난 레바논계 프랑스인인 카를로스 곤은 일본 탈출 뒤 레바논에서 지내고 있다. 동아일보 DB
그럼 카를로스 곤의 독재체제가 무너진 뒤, 닛산의 경영은 어떻게 됐을까요. 답은 숫자로 알 수 있죠. 2024년 글로벌 판매대수는 334만대. 정점이었던 2017년 577만대와 비교하면 42%나 급감했습니다.
닛산의 2020~2024년 글로벌 판매량. 2023년 판매량이 약간 늘면서 기대를 모았지만 2024년 다시 334만6000대로 줄었다. 닛산 제공
근본적인 이유를 하나 꼽자면 이겁니다. 한층 극심해진 파벌 경쟁에 매몰돼있기 때문이죠. 일단 애초에 유능한 사람이 리더가 되는 구조가 아니고요. 누가 리더가 되든 끌어내리려고 기회를 엿보죠. 다들 자기가 올라설 수 있다고 기대하니까요. 이래서는 어떤 결속도, 추진력도 기대할 수 없죠. 대신 내부 스파이질과 언론 플레이가 판을 치는데요.
카를로스 곤에 대한 쿠데타 성공으로 권력을 잡았던 사이카와 히로토 사장. 하지만 본인 역시 곤처럼 보수를 편법으로 축소신고했던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쫓겨나듯 그만둬야 했죠. 누군가 일부러 언론에 내부 정보를 흘린 겁니다.
지난해 8월 기술개발 협력을 발표하며 손을 맞잡았던 우치다 마코토 닛산 전 사장(왼쪽)과 미베 토시히로 혼다 사장(오른쪽). 이후 지난해 12월 두 회사는 합병 검토를 공식 발표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두 달 만에 협상은 없던 일이 됐다. 자존심이 강한 닛산 측이 혼다의 자회사 편입 제안을 거부했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이를 두고 우치다 전 사장에 대해 ‘위기의식이 부족하다’, ‘무능하다’, ‘결단력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애초에 우치다를 CEO로 임명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AP 뉴시스
이제 닛산의 자력갱생은 쉽지 않아 보이고요. 또다시 외부에서 구세주를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언론에선 오랜 인연(악연 포함)으로 얽힌 르노, 한번 협상이 엎어진 혼다, 러브콜 보내는 대만 폭스콘 등을 거론하는데요. 아마도 자존심 강한 닛산이 확 숙이고 들어가야 할 겁니다. 화려한 부활의 상징이었던 닛산의 추락. 아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겁니다. By.딥다이브
닛산을 추락시킨 파벌 싸움을 두고 마치 한국 정치를 보는 듯하다는 블로그 글이 있더군요. 사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던 참이었는데요. 그래도 한번 부활에 성공했던 닛산이니 두 번째 부활도 가능하려나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일본 대표 자동차 제조사 닛산자동차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직원 2만명을 감축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예고했죠. 적자와 경영위기, 그리고 외부 수혈 모색. 1999년의 상황이 되풀이됩니다.
-왜 닛산에선 경영위기가 반복될까요. 많은 이들이 닛산의 고질병 같은 파벌갈등을 지적합니다. 주인 없는 회사 닛산은 수십년 전부터 권력을 잡기 위한 사내 파벌싸움이 극심했고, 상대를 끌어내리기 위한 내부 스파이질과 언론플레이가 판을 쳤습니다.
-강력한 독재자 카를로스 곤은 사라졌지만 조직은 더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글로벌 무대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기업이 사내 정치에 에너지를 쏟고 있으니 산으로 가고 있죠. ‘기술의 닛산’이란 그 명성이 무색해졌습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