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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민트색 자전거를 타고 왔습니다. 안장 뒤에 커다란 바구니가 묶여 있었어요. 제 손에 들린 ‘나눔’ 상자와 바구니의 크기부터 가늠해 보았습니다. 들어갈까. 봄은 와 있었지만 그녀는 두툼한 패딩을 입고 있었어요. 로고 없는 검은 패딩은 그녀의 작은 몸을 더 작아보이게 했어요.
두 번째 중고거래지만, 그녀와 만난 건 처음이었습니다. 시작은 빨간색 동물 이동장 ‘나눔’이었어요. 나의 첫 고양이가 죽기 직전까지 병원을 오가며 사용했기 때문에 보기만 해도 주르륵, 눈물이 나는 물건이었어요. 지금 함께 사는 고양이가 이어 사용했는데 어느 날 이동장이 꽉 끼더라고요. 듬직한 뒷모습에 기쁜 마음으로 이동장을 놓아 보내기로 한 거예요. 중고거래앱에 ‘나눔’ 등록을 하고 제일 먼저 연락해 온 사람이 그녀였어요. 하지만 약속을 정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그녀는 새벽에 “이제 들어와서”, “옷 꼴이 말이 아니라” 등의 메시지를 남겼어요. 결국 물건만 전달하는 비대면 ‘문고리 거래’가 되었죠. 그 과정에서 그녀가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동네의 길냥이들을 돌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너무 많은 양을 주문해 버린 고양이 사료를 다시 나누기로 한 두 번째 거래에서 마침내 그녀를 만난 것이죠. 따뜻하고 곧은 사람을 말이에요.
당근 유니버스에선, 내가 알지 못하고 죽을 뻔했던 놀라운 세계와 마주치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나눔을 하지 않았다면, 15년 동안 매일 밤 민트색 자전거를 타고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 고양이의 일생과 사람의 시간에 대해 오래 오래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이웃과 나눔 할 기회가 없었다면, 고양이 밥에 독극물을 섞는 사람과 필요할 때는 오지 않는 구청, 동물보호단체의 이면에 대해 어떻게 함께 분노할 수 있었겠어요. 영하의 새벽, 재개발 지역에 버려진 개들의 눈빛이 무섭긴 하지만, 그녀가 밥 주는 사람이라는 건 개들도 알아본다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의 눈을 내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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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간 수면의 중요성과 ‘균형’에 대해 말했는데, ‘균형’이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수 있다고 그녀는 대답했어요. 걷지 못할 만큼 몸이 아프다면 동물을 돌보는 일은 중단한다, 하지만 지금은 초저녁에 잠을 자면 고양이를 돌볼 수 있다, 라고요.
중고거래에서 길냥이를 돌본다 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선선히 ‘나눔’을 해준다며 세상엔 착한 사람들이 참 많더라고 그녀가 말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 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동네 중고거래앱 커뮤니티에서 그녀처럼 동물을 구조하고 돌보는 사람들, 그들을 열정적으로 돕는 이들을 만날 수 있어요. 반려동물의 건강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약대생들도 있고요. 가족, 학교, 일 아닌 나와 아무 관계 없는 누군가를 몹시 만나고 싶어한 적은 언제였나, 생각해봅니다. 나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걸까요.
다시 빨간 이동장 이야기입니다. 푹신한 요즘 제품과 달리, 단단한 구식 이동장은 험한 상황에서 새끼들 구조하기에 딱 맞춤이라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제가 받은 가장 아름다운 ‘구매후기’였습니다.
@madame_carrot 당근, 고양이, 글쓰기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