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출간된 스테디셀러 별 마케팅 없이 5년전부터 역주행 베스트셀러 재진입, 170쇄 찍어 ‘강렬한 문장 SNS 공유’ 진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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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된 지 30년 가까이 된 소설이 도대체 어떤 마력을 지닌 걸까.
지난해에도 큰 인기를 끌었던 양귀자 작가의 소설 ‘모순’이 새해 들어서도 전년보다 두 배가량 판매량이 늘어나며 출판계의 ‘모순 미스터리’를 이어가고 있다. 27년 전 출간됐다가 5년여 전부터 역주행을 시작한 소설은 최근 몇 년 동안 별다른 마케팅도 없이 불티나게 팔린다.
11일 교보문고와 예스24 종합베스트셀러 종합순위에서 ‘모순’은 5위다. 지난해 말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잠시 순위가 밀렸던 시기를 빼면 줄곧 종합순위 상위권이다.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1월 ‘모순’의 전년 대비 판매증가율은 97%에 이른다. 2020년 갑자기 전년보다 158% 판매량이 뛰면서 베스트셀러에 재진입한 이 책은 2023년 85%, 2024년 131% 등 해마다 판매량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최근 170쇄까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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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량이 급증한 건 팬데믹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2020년 무렵부터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독서에 대한 관심이 커진 시기이긴 했지만 ‘특별한 계기’를 찾기 어려웠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파워 유튜버들이 ‘인생 책’으로 꼽으며 회자됐지만, 이는 이미 판매가 급상승한 뒤에 나온 콘텐츠들”이라며 “꾸준히 보태진 독자들의 평과 입소문의 힘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도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2020년경 한국 문단에 불어온 ‘페미니즘 리부트’ 영향이란 진단도 나왔지만, 이 역시 불충분하다. 심은우 쓰다출판사 대표는 “모순은 전통적인 페미니즘 메시지와는 결이 다른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출판계에선 모순이 강렬한 문장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문학을 소비하는 2030 트렌드와 잘 맞는 소설이란 진단도 나온다. ‘모순’엔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등 삶을 꿰뚫는 듯한 아포리즘적 문장이 적지 않다. 최근 출판계에서 또 다른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는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2023년)이나 정대건 작가의 ‘급류’(2022년)도 이처럼 강렬하고 감각적인 문장들로 관심을 모았다.
모순은 2020년만 해도 20대 구매 비중이 14%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는 24%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여성 독자 비율은 87%다. 김 담당은 “모순을 신간으로 알고 읽는 20대도 상당수다. 광고 카피 같은 문장도 많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 20대의 고민이 잘 담겨 동시대성이 여전히 살아 있는 작품”이라며 “당분간 이런 흐름이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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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