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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전 책값 받아주세요”…교보문고에 100만원 놓고 간 한 손님

입력 | 2024-03-20 11:28:00


A 씨가 놓고간 100만원과 그가 쓴 자필 편지. 교보문고 제공


고등학생 시절 교보문고에서 학용품과 책 등을 훔친 30대가 뒤늦게 100만 원을 서점에 돈을 내고 사라졌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20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교보문고 강남점에 한 고객이 설명 없이 카운터에 봉투를 내밀고 사라졌다.

당시 서점 직원들은 봉투를 분실물로 보관했다. 하지만 고객은 시간이 지나도 봉투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직원들은 최근 봉투를 열어봤는데, 안에는 5만 원권 20장과 함께 손 편지 한 통이 들어있었다.

A 씨는 편지에서 “오늘은 책 향기가 마음을 가라앉히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며 “살면서 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다. 모든 잘못을 바로잡을 수는 없지만 가능하다면 진정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삶을 살고 싶다”며 15여 년 전 있었던 일을 고백했다.

A 씨는 고등학생 때 책을 읽기 위해 처음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들렀지만, 이후 책과 각종 학용품에 여러 차례 손을 댔다. 그의 행각은 결국 서점 직원에게 발각됐고, 그의 아버지가 대신 책값을 내주면서 일단락 됐다고 한다.

A 씨는 “세월이 흘러 두 아이를 낳고 살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내게 갚지 못한 빚이 있단 걸 알았다”며 “마지막 도둑질을 걸리기 전까지 훔쳤던 책들과 학용품. 그것이 기억났다”고 했다.

이어 “가족에게 삶을 숨김없이 이야기하고 싶은데, 잘못은 이해해 줄지언정 그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내가 뭘 했는지 묻는다면 한없이 부끄러울 것 같았다”며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책값을 받아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도 교보문고에 신세 졌던 만큼 돕고, 베풀고, 용서하며 살겠다”고 덧붙였다.

A 씨가 쓴 자필 편지. 교보문고 제공


안병현, 김상훈 교보문고 공동 대표이사는 이같은 사연에 “과거에 대한 반성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한창 돈 들어갈 곳이 많은 30대 가장이 선뜻 내놓기 어려운 금액이라 그 마음이 가볍게 여겨지지 않는다”며 “책을 훔쳐 가더라도 망신 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좋은 말로 타이르라고 했던 창립자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됐다”고 전했다고 한다.

교보문고는 해당고객의 돈에 100만 원을 더해 총 200만 원을 아동자선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에 전달할 예정이다.

교보문고 창업자 고(故) 신용호 전 회장은 설립 당시 특별한 내부규정 5가지로 직원들을 교육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그 대상이 초등학생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존댓말을 쓸 것 △책을 한곳에 오래 서서 읽는 것을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책을 이것저것 보기만 하고 구매하지 않더라도 눈총을 주지 말 것 △책을 앉아서 노트에 베끼더라도 제지하지 말고 그냥 둘 것 △책을 훔쳐 가더라도 절대로 도둑 취급하여 망신을 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서 좋은 말로 타이를 것 등이 신 전 회장의 언급한 내부규정이다.

최재호 동아닷컴 기자 cjh12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