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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묘 나라’ 러, 혹한속 숨진 고양이에 발칵

입력 | 2024-02-06 03:00:00

열차속 배회하다 직원에 쫓겨나
38만명이 해고 청원 등 들끓어
NYT “성난 민심 달래기 정부 술책”



텔레그램을 통해 널리 퍼진 고양이 트윅스의 모습과 트윅스 수색 전단 사진. 텔레그램 캡처


‘애묘(愛猫)의 나라’ 러시아에서 혹한의 날씨에 열차에서 쫓겨난 고양이가 끝내 숨진 채 발견되자 국민적 공분이 일어났다. 러시아철도공사(RZD)는 이례적으로 사장 사과문까지 발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일각에선 “전쟁과 경제난에 지친 국민들의 눈을 돌리려는 정부의 술책”이란 비판도 나온다.

문제의 사건은 지난달 11일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기차에서 발생했다. 집고양이 ‘트윅스’가 주인이 잠든 사이 케이지를 탈출했는데, 한 직원이 길고양이인 줄 알고 열차 밖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화가 난 주인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이를 알리자 러시아 사회가 들끓기 시작했다.

해당 직원은 즉각 사과했지만, 약 38만 명이 해고 청원에 서명했다. 트윅스 수색에도 수백 명이 자원했지만, 지난달 20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결국 RZD의 올레크 벨로조로프 사장은 “불가항력에 따른 죽음을 막기 위해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더해 지난달 23일 러시아 하원은 교통법 개정에 착수했고, 검찰은 “동물학대법 적용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 보수 활동가가 제안한 ‘트윅스 추모비’ 건립도 지지를 얻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 각계가 ‘트윅스 스캔들’에 이상할 만큼 민첩하게 대응한 점을 주목하라”고 2일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가 고물가로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전략적으로 ‘트윅스 스캔들’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3년차로 접어들며 서민경제 사정이 크게 나빠진 러시아는 최근 난방이 일시 중단되는 일도 빈번하다. NYT는 “2명 중 1명이 고양이를 키우는 국민들에게 트윅스는 관심 전환용 ‘선전 소재’로 적합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러시아 당국이 사람에겐 가혹한 점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비판에 ‘군 모독죄’를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NYT는 “우크라이나 국기 색인 파란색과 노란색 스카프를 매고 사진을 찍었다고 재판에 넘겨진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에선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9000명 이상이 군 모독죄 혐의로 기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