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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페라리’ 기대했는데…포르셰 주가는 왜 후진하나[딥다이브]

입력 | 2024-01-31 10:00:00


포르셰와 페라리. 여러분은 두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중 무엇을 더 사고 싶으신가요. 어차피 살 돈이 없는데 왜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냐고요? 물론 차를 살 돈이야 없죠. 하지만 주식이라면 다릅니다. 포르셰 주식은 주당 약 11만원, 페라리는 45만원 정도이니까요.

라이벌인 두 자동차 기업의 주가가 지난해 들어 뚜렷하게 다른 흐름을 보였습니다. 이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는데요. 포르셰와 페라리가 보여주는 자동차와 럭셔리 시장의 단면을 들여다봅니다.

질주 대신 후진 중인 포르셰 주가. 도대체 왜? 포르셰 홈페이지

*이 기사는 3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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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에 따라잡힐라
‘유럽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 제조사’는 어디일까요. 바로 독일 포르셰입니다. 2022년 9월 독일 증시에 상장한 포르셰는 상장하자마자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는 물론 모기업인 폭스바겐그룹까지 제쳤죠. 전 세계로 범위를 넓혀도 테슬라와 토요타에 이어 시가총액 3위의 자동차 회사입니다.

세계 자동차 제조사 시가총액 순위. 현대차는 15위이다. 출처는 companiesmarketcap.com

포르셰는 희망범위 최상단인 82.5유로의 공모가를 인정받으며 증시에 데뷔했었죠. 워낙 화려한 출발이어서 딥다이브의 첫 번째 뉴스레터에서 다루기도 했는데요(딥다이브 포르셰 IPO 편 참고). 포르셰 주가(티커 P911)는 이제 얼마일까요. 29일 종가가 76.48유로. 공모가보다 7% 넘게 떨어졌고, 고점(2023년 4월 118.9유로)과 비교하면 35% 넘게 급락했습니다.

2022년 9월 상장 뒤 최근까지 포르셰 주가 흐름. 주가가 공모가 아래로 떨어졌다. 구글 금융

사실 포르셰가 IPO 했을 땐 다들 증시에서 ‘제2의 페라리 신화’를 쓸 거라고 기대했거든요. 그럼 이탈리아 슈퍼카 제조사, 페라리 주가 흐름은 어떨까요.

페라리는 2015년 10월 공모가 52달러로 뉴욕증시에 상장했죠. 티커는 RACE. 초반에 잠시 부진했던 주가는 2016년부터 질주본능을 발휘했는데요. 지난해에도 레이스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26일 기준 종가는 340.17달러. 상장 이후 500% 넘게 올랐고, 최근 1년 동안에도 35% 뛰었죠.

2015년 10월 상장 후 최근까지의 페라리 주가. 최근 1년 동안도 주가가 35% 상승했다. 구글 금융

지난해 주가가 정반대 흐름을 보이면서 두 기업의 시가총액 차이는 상당히 좁혀졌습니다. 1년 전만 해도 포르셰 시총이 페라리의 두배를 훨씬 넘어섰는데요. 지금은 페라리 시총 622억 달러, 포르셰 757억 달러입니다. 불과 1년여 만에 페라리가 이렇게까지 맹추격을 할 줄이야. 아니, 포르셰가 후진한 결과라고 봐야 할까요.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최근 기사에서 이렇게 꼬집었죠. “(상장 당시 포르셰) 투자자들은 페라리와 경쟁할 슈퍼카 주식이란 비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꿈은 아직 현실이 되지 않았고, 일부 투자자들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 의심합니다.


흔들리는 포르셰
혹시 포르셰 판매가 줄어들기라도 한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지난해 1~9월 판매량은 약 24만3000대로 전년보다 10% 늘었죠. 이자∙세금 차감 전 마진(EBIT마진)도 18.3%로 양호했고요. 폭스바겐(6.8%)이나 현대차(10.1%), 메르세데스 벤츠(13.2%)와 비교해도 확실히 인상적인 마진율입니다.

하지만 포르셰 판매가 흔들린다는 신호는 포착됩니다. 일단 마진율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죠. 가장 큰 성장 동력이었던 중국 시장이 부진한 탓이 큰데요. 포르셰 매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판매량은 지난해 3분기에 1년 전보다 40%나 쪼그라들었습니다. 부동산 시장 침체, 청년 실업률 증가 같은 중국 경제의 전반적인 둔화가 영향을 끼친 거죠.

미국이나 유럽 시장도 고금리 탓에 전망이 밝지만은 않은데요. 최근 포르셰 측은 애널리스트들에게 올해 판매량이 정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질을 줬다고 합니다. 회사 측은 블룸버그에도 “올해는 가치지향적 성장과 안정적 판매 수준”에 집중할 거라며, 올해 4개 모델 업데이트를 진행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하죠. 상황이 썩 좋지 않지만 ‘신차 효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인데요.

실제 지난 25일 포르셰는 첫 SUV 전기차 ‘마칸 일렉트릭’을 공개했습니다. 카이엔 아랫급인 마칸은 지난해 카이엔을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포르셰 차종으로 올라섰죠. 그래서 마칸 전기차가 엄청난 기대주이건만. 주가를 보면 시장 반응이 생각만큼 열광적이진 않습니다. 이게 사실 1년 전에 나왔어야 할 신모델인데, 한참 지각 출시됐기 때문이죠. 폭스바겐 그룹의 아주 큰 골칫거리인 소프트웨어 개발 지연 탓이었는데요. 그 결과 하필 전기차 신모델 출시 시점이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고꾸라지는 때와 겹치고 말았습니다. 참, 바쁘게 치고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래저래 발목 잡는 일투성이입니다.

포르셰가 25일 새로 내놓은 마칸 일렉트릭. 포르셰의 첫 전기 SUV이다. 포르셰 홈페이지



럭셔리주인가 아닌가
요약하자면 중국 경제 위축과 고금리, 신차 출시 지연으로 포르셰 성장 전망이 어두워졌고, 주가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죠. 투자자들이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라, 경기 영향을 받지 않는 럭셔리 기업인 줄로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아니네?’라고 말이죠.

일반적으로 자동차 제조사 주식은 주식시장에서 높은 가치평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영업이익률이 낮은데다, 전기차 같은 기술혁신에도 취약하기 때문이죠. 12개월 선행 PER(주가가 미래 12개월 주당순이익의 몇 배인지)이 현대차는 4배 내외, 메르세데스벤츠가 5배 수준인 이유인데요. 포르셰는? 선행 PER이 13배 수준으로 상당히 높은 가치평가를 받고 있죠.

그럴 수 있는 건 포르셰가 일반적인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라고 그간 주식시장에서 평가 받아왔기 때문인데요. 그 평가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번스타인의 자동차 애널리스트 다니엘 로스카 역시 바로 이 점을 지적합니다. “포르셰는 모델 주기에 의존하는 순환 주식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투자자들이) 럭셔리 기업에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페라리 로고. 페라리 홈페이지

자, 그럼 페라리는 어떨까요. 일단 페라리는 판매량이 포르셰보다 훨씬 적죠. 연간 30만대를 판매하는 포르셰와 달리, 페라리는 판매량이 그 20분의 1 수준인 연간 1만3000대 남짓인데요. 가격 면에서도 차이가 상당합니다. 페라리 대당 평균 판매가는 약 36만8000유로(약 5억3000만원). 포르셰는 그 3분의 1 정도에 그치죠.

페라리는 지난해 1~9월 1만418대를 판매했는데요. 판매량은 1년 전보다 5%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이것만 보면 성장세가 포르셰보다 못하죠. 그런데 같은 기간 페라리 매출은 19%나 늘었습니다. EBIT마진은 포르셰보다 10%포인트나 높은 28%에 달하고요. 압도적인 실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도대체 페라리는 차를 별로 많이 팔지 않고도 어떻게 돈을 잘 벌까요. 비결은 ‘개인화(personalization)에 있다는데요. 페라리는 기본 차값도 비싸지만 아주 광범위한 범위의 개인화 옵션을 제공합니다. 거의 완전히 새로운 ‘나만의 차’를 만들 수 있게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죠. 그 결과 개인화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차값은 20~100%까지도 올라가는데요. 부유한 페라리 고객들이 점점 더 값비싼 개인화 옵션을 선택하면서 페라리가 버는 돈은 늘어만 갑니다.

보통 자동차 제조사들은 성장을 위해서는 판매량을 늘려야만 하죠. 그래서 경기가 안 좋을 땐 가격을 낮춰서라도 물량 밀어내기를 해야 하고요. 페라리의 성장방식은 이런 일반 자동차 기업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물량에 의존하지 않고, 판매가격을 올리며 커가고 있죠. 달리 말하자면 페라리는 회사가 가격 결정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네데토 비냐 CEO는 지난해 3분기 실적발표에서 이렇게 밝혔죠. “개인화의 지속적인 매력에 힘입어 성장한 기록적인 분기였습니다. 주문량은 여전히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2025년 전체에 걸친 모든 지역의 강력한 수요를 반영합니다.” 내년 말까지의 생산량이 이미 주문이 꽉 차 있다고 얘기한 건데요. 경제 둔화? 고금리? 최상위 부자만 상대하는 페라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베블런재와 에르메스
가격이 계속 올라가는데, 수요는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난다? 수요-공급의 법칙 작동하지 않는 이런 재화를 일컫는 용어가 있죠. 바로 ‘베블런재(Veblen good)’. 미국 경제학자 소스턴 베블런이 1899년 만든 개념인데요.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소비하는 사치재가 여기 해당합니다.

페라리가 전형적인 베블런재라 할 수 있겠죠. 주식시장에서 페라리의 선행 PER은 약 40배로, 포르셰나 다른 일반적인 자동차 제조사를 압도합니다.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럭셔리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에르메스 가방 가격은 300만원부터 시작한다. 대표 제품인 버킨백 가격은 기본이 1500만원부터. 에르메스 홈페이지  

패션계에도 비슷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프랑스 명품회사 에르메스 주가는 주당순이익의 약 50배 수준으로 평가받는데요. 경쟁사인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나 케어링(구찌 모회사)은 그 절반으로 거래됩니다. 명품 회사끼리도 차이가 큰 건데요.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럭셔리 기업의 지난해 성장세는 이전보다 확연히 둔화했죠. 하지만 에르메스는 지난해 3분기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매출 성장(15.6%)을 기록하며 업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 회사 측은 “고객 수요에 부담을 주지 않는 가격인상 덕분에 경제적 역풍을 이겨냈다”고 자평했는데요. 1만 달러가 넘는 에르메스 가방에 대한 수요는 가격이 올라갈수록 오히려 늘고 있는 겁니다. 덕분에 에르메스 주가는 지난 1년 동안 15% 넘게 뛰었습니다. LVMH는 -3%, 케어링은 -32%를 기록했는데 말입니다.


전기화 이후 2라운드는?

페라리의 슈퍼카. 페라리 홈페이지

결론적으로 슈퍼카와 명품 시장도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그냥 부자가 아니라 ‘슈퍼리치’를 위한 브랜드만이 성공을 이어가고 있죠. 그 결과 포르셰는 당초 IPO 때 기대했던 ‘페라리 대체제’로 주식시장에서 자리 잡진 못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평가도 냉정하죠. 최근 도이치뱅크는 포르셰 목표주가를 120유로에서 100유로로 낮췄습니다. “가격 보호를 위해 중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물량을 배분한 게 마진 방어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팀 로코사 애널리스트)는 이유였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포르셰 말고 페라리 주식이 더 유망하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또 아닙니다. 페라리 주가는 올라도 너무 올랐거든요. 지난해 말 HSBC와 엑산BNP파리바는 각각 페라리 투자등급을 ‘아웃퍼폼’에서 ‘중립’으로 하향조정했습니다. 자고로 좋은 주식이란 가치보다 가격이 싼 주식이죠. 팁링크스에 따르면 페라리 목표주가 평균치는 365달러. 현재 주가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또 페라리는 올해와 내년에 중요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데요. 바로 순수전기차 시장 진출입니다. 이미 페라리는 하이브리드차량을 판매 중이죠. 엔진 굉음이 특징인 슈퍼카에 웬 하이브리드엔진인가 할 수 있는데요. 지난해 3분기 페라리 출하량 중 과반수(51%)가 하이브리드차량일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페라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순수전기차 신모델을 선보이기 위해 현재 전용공장을 짓고 있죠. 올해 6월 새 공장이 완공되고, ‘전기 페라리’ 신모델을 2025년에 출시한다는 계획입니다.

과연 페라리는 전기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을까요. 출발이 한발 늦은 감도 없진 않은데요. 비냐 CEO는 “모든 테스트를 프로토타입에서 진행 중이고, 모든 것이 제시간에 맞춰 왔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전기 페라리가 시장 기대를 충족해낼 지는 나와봐야 압니다. 현재로선 예측이 어렵죠. 이와 비교하면 포르셰는 비록 소프트웨어 문제로 개발에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전기화를 더 일찍부터 앞서서 해왔고, 이제 성과를 보여주기 시작할 겁니다. 두 럭셔리 스포츠카의 주가 경쟁 1라운드는 일단 페라리의 승리로 막을 내리는 듯하지만, 전기화 이후의 2라운드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By.딥다이브

포르셰는 상장 전부터 페라리와 끊임없이 비교 당했습니다. 특히 ‘포르셰는 페라리만큼 럭셔리는 아니다’라는 지적이 참 많았는데요. 현재까지만 보면 그 지적이 맞아떨어졌군요. 그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2022년 9월 화려하게 증시에 데뷔했던 포르셰 주가가 빠르게 후진 중입니다. 최고점보다 35%나 떨어졌죠. 전체적으로 판매가 늘고는 있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성장세가 확연히 꺾였기 때문입니다.
-반면 페라리 주가는 상승흐름을 이어가며 견조합니다. 압도적인 이익률과 매출성장세 덕분인데요. 선행 PER도 포르셰는 13배, 페라리는 40배에 달합니다.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럭셔리 회사로 인정 받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거시경제에 영향 받지 않고 가격 결정력이 있는 기업이어야만 주식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급 스포츠카 시장도 양극화된 셈인데요. 하지만 시장은 계속 변화하는 법. 전기 스포츠카 시장을 두고 벌어질 2라운드의 결과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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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