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제게 건축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매개체” [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입력 | 2023-11-25 14:00:00

[12] ‘이혜인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 이혜인 씨 (하)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

이헤인 공간디렉터는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명확히 아는 청년이었다. 일을 단지 삶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일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진지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사진제공 이혜인 씨, ⓒ 백도현 작가



#18일 상편(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1117/122236069/1)에서 이어집니다.

‘공간 디렉터’ 이혜인 씨(37)는 ‘공간(空間)’을 품에 안고 줄곧 달려온 청년이다. 홍대 건축학과를 나온 그는 스리랑카에서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건축 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 아이웨어 ‘젠틀몬스터’ 공간팀에 초기 멤버로 합류해 명성을 쌓았다. 현재 ‘이혜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는 이 대표는 그간 젠틀몬스터 하우스도산과 로우클래식 플래그십스토어, 콤포트서울 등 선보인 작품마다 세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청년실업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서, 이 디렉터가 자신이 하고픈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건 당연히 축복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역시 끊임없는 노력과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재능이 있다고 누구나 운이 따르는 건 아니지만, 이 청년 건축가는 뭣보다 함께 일한 이들과의 “소통과 협력”이 자신을 성장시켜온 가장 큰 무기였다고 여겼다. 그가 공간이란 화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들어봤다.

-코이카에서의 첫 직장생활은 즐거웠나요.
“웬걸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어요. 일이 의미가 없다거나 재미있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런데 뭐든 그렇지만,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덜컥 뛰어들 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맡은 프로젝트들이 엄청나게 규모가 컸거든요. 스리랑카 국제회의장 건설사업 같은 것도 참여했으니까요. 사실 그런 일에 투입되기엔 경력이 너무 없었어요. 물론 전 서포트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현장에서 부딪혀가며 하나하나 배우는 상황이라 정말 하루하루가 정신없었어요. 덕분에 일을 빨리 배울 수 있게 됐고, 이젠 큰 프로젝트에도 겁먹지 않게 되긴 했지만…. 진짜 매일매일 24시간 일 생각만 해야 했던 시기였어요.”

-그래도 보람 있었겠어요.
“그렇죠. 세상에 도움이 되는, 말 그대로 ‘건설적인’ 일이었으니까요. 만약 한국에 그대로 있었다면, 20대 중반에 그런 큰 프로젝트들을 경험할 수 없었겠죠. 유엔하고 협업해서 학교를 지어주는 프로젝트를 한 적도 있었는데, 스리랑카 공군 비행기를 타고 통제구역에 들어가 현장을 살펴보기도 했어요. 사회초년생으로선 돈 주고도 경험할 수 없는 엄청난 기회들이 많았죠.”

이혜인 디렉터의 서울 마포구 연희동 자택. 스리랑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지는 트로피컬 모더니즘에 대한 애정이 깊다. 집안 곳곳에서도 그런 취향이 잘 묻어난다. 사진제공 이혜인 씨, 인스타그램 @leehaeinn

-4년 동안 일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뭔가요.
“다양한 경험을 많이 쌓았으니, 이제부터는 ‘내 일을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코이카에선 아무래도 정해진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게 업무잖아요. 좀더 자유롭게 제가 꿈꾸는 건물을 지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 거죠. 물론 갑자기 한국에 오면 당장 일감이 있을지 없을지도 몰랐죠. 하지만 역시 도전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잖아요. 그때 엄마도 ‘사람은 올라갈 때가 있으면 당연히 내려갈 때도 있다. 그걸 겁내지 마라’고 응원해주셨어요. 그게 큰 힘이 됐어요.”

-그때 젠틀몬스터에 취직한 건가요.
“아뇨. 처음엔 학교 친구랑 동업해서 작은 사무실을 하나 차렸어요. 근데 국내에서 경력이 짧다 보니 아무래도 잘 안 됐죠. 그래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들던 차에, 제가 했던 몇 가지 프로젝트들을 보고 젠틀몬스터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때는 젠틀몬스터가 선글라스로 국내외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으던 시기인데, 쇼룸 등을 만드는 ‘공간팀’은 이제 막 꾸려지기 시작했던 시점이었어요. 저도 계속 업계 동향을 살펴보면서 젠틀몬스터가 굉장히 재밌는 프로젝트를 많이 한다는 걸 알고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던 터라 제안이 너무 반가웠죠. 지금은 공간팀만 100명이 넘지만 그때는 제가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 영입이었을 거예요.”

-젠틀몬스터가 크게 성장한 비결이 뭘까요.
“제가 운영진도 아니었고 지금은 떠난 직장이라 함부로 평가하긴 그렇지만, 제가 면접 볼 당시의 얘기를 해드릴게요. 보통 회사 면접이라고 하면 정장 입고 정자세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을 떠올리잖아요. 근데 젠틀몬스터는 딱 갔더니 사장이랑 임원들이 모이셔서 제 포트폴리오를 펼쳐놓고 저랑 토론을 하는 거예요. 그것도 다 같이 바닥에 그냥 퍼질러 앉아서. 서로 의견을 공유하면서 1시간 정도 쉬지 않고 대화를 했어요. 그때 느꼈어요. 이런 수평적인 구조로 서로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회사라면 분명 성장 가능성이 높겠구나.”

-7년 동안 있었다고 들었어요.
“네, 시간이 어떻게 그리 빨리 갔는지 모르겠어요. 당시의 성과를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다른 건 몰라도 정말 온몸을 던져서 최선을 다해 일했다는 거 하나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7년 동안 회사 일이 제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거의 100%, 모든 것이었어요. 아무래도 이런 분야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더 집중력과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게 많거든요. 머리 속에 온통 일 생각 뿐이었던 시절이었어요.”

럭셔리패션브랜드 ‘우영미’의 프랑스 파리 생토노레 거리에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 이혜인 디렉터가 내외부 디자인을 맡았다. 사진제공 우영미

-잘 나가던 직장을 관둔 이유가 뭡니까.
“금방 말씀드린 게, 반대로 생각하면 퇴사한 이유가 되기도 했어요. 점점 제 자신이 고갈되는 기분을 느꼈어요. 채워지는 건 없이 계속 쥐어짜서 모든 걸 쏟아 붓기만 하는 느낌이었죠. 다른 대부분 직장인들도 저와 마찬가지겠죠. 근데 너무 일에 얽매이고 매몰되는 제 자신이 점점 걱정됐어요. 프로젝트가 조금만 잘 진행되지 않아도 너무 불안하고, 조금이라도 어그러지면 스트레스 받고 폭음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건강도 점점 나빠지고…. 이러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시도도 못 해보고 끝날 수도 있을까봐 덜컥 겁이 났어요.”

-진짜 하고 싶은 건 뭐였을까요.
“전 스리랑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잖아요. 그곳의 바다와 숲 자체도 사랑했지만, 그런 자연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건축도 너무나 사랑했거든요. 특히 ‘트로피컬 모더니즘’의 대가라 불리는 세계적인 스리랑카 건축가 제프리 바와를 존경했어요. 저도 그런 자연을 닮은 편안한 건축을 하고 싶은데, 회사에서는 정해진 방향이라는 게 있으니까. 퇴직 1, 2년 전부터 사장님 포함 여러 분들께 조심스레 상의를 드렸습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뒤에 잘 정리하고 퇴사했습니다.”

-그게 지금의 ‘이혜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린 계기군요.
“네, 벌써 2년 반이나 됐네요. 다행히 그동안 인맥도 꽤 쌓았고 제가 했던 프로젝트들이 이쪽 분야에서 꽤 인정을 받은 덕분에, 처음 한국에 와서 창업했을 때처럼 막막하거나 어려운 상황은 아니에요. 오히려 너무 좋은 제안을 많이 해주셔서 모두 다 함께 못 하는 게 죄송할 경우가 많죠.”

-더 바빠진 건 아닌가요. 원래 자기 사업이 제일 힘들다던데.
“맞아요. 근데 최대한 욕심을 안 내려고 해요. 처음 차릴 때는 정말 비상업적인 프로젝트만 하려고 했는데, 먹고 살아야 되니 그러진 못 하고 있어요, 하하. 다만 어떤 일을 하기로 결정할 때는 ‘내가 이 일을 하게 되면 서로가 행복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해요. 당장 근사하고 멋진 프로젝트로 보이더라도,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걸 덜컥 맡았다가는 저도 맡겨주신 분도 서로 고통스러울 뿐이니까요.”

이혜인 디렉터의 반려견 ‘버드’의 애기 시절. 귀가 살짝 접힌 모습이 너무나 귀여운 이 친구는 사랑스러운 ‘시고르자브’ 종이다. 올해 5월 입양했다. 사진제공 이혜인 씨

-그건 일해보지 않고서는 알기 힘들지 않나요.
“그래서 계약 전에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눠요. 저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한 분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어떤 스타일인지를 알려고 시간을 많이 들여요. 전혀 프로젝트랑 상관없이 함께 전시 같은 걸 보러가자고 제안하기도 해요. 그리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도 알려드리려고 노력하고요. 그렇게 소통하고 서로를 알아야 양쪽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방식이 독특하네요.
“제 방식을 누군가에게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하지만 어떤 식으로건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제가 그 일을 굳이 맡을 이유가 있을까 싶어요. 저에겐 건축은 사람과 소통하는 매개체이자 방식이에요.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물은 나올 수가 없는 거죠. 좀 뜬금없는 얘기긴 한데, 제가 지금 ‘버드’라는 개를 키우고 있거든요. 이 친구를 만나는 과정에서도 깨달은 게 많아요.”

-어떤 건지 들려주시겠어요.
“실은…, 저한테는 평생 마음에 죄책감으로 남은 일이 하나 있었어요. 대학교 때 강아지를 키우다가 파양을 했거든요. 스리랑카 살 때도 개를 키워서 전 제가 반려동물과 생활하는데 어떤 문제도 없을 거라고 과신해서 덜컥 비글 한 마리를 입양했어요. 근데 어릴 때는 다 부모님이 키워주신 거였더라고요. 혼자 자취하는 대학생으로선 도저히 감당이 안 됐어요. 저도 힘들고 강아지도 힘든 상황이었는데, 비글을 기르는 친한 언니가 보다 못해서 결국 데려갔어요.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르는 게 얼마나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크게 깨달았죠.”

-많이 속상했나보군요.
“지금도 그 언니한테 가서 자주 들여다보긴 하는데, 다행히 잘 지내긴 하지만 저로선 너무 미안하죠. 끝까지 책임져주지 못해 부끄럽기도 하고요. 그 뒤로 제대로 준비를 마친 뒤에 다시 강아지를 들이겠단 생각으로 십수 년 동안 유기견 봉사활동도 다니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올해 유기견인 버드를 만나게 됐죠. 저도 거의 집이랑 제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니까 버드를 외롭게 놔두지 않을 여건이 만들어졌고요. 입양 당시에 보호기관에 과거 파양 경험도 다 솔직하게 말씀드렸는데, 더 진정성 있게 봐주신 것 같아요.”

이혜인 디렉터가 반려견 버드와 함께 스쿠터에 앉은 모습. 이 디렉터의 인스타그램에는 라이딩하는 사진이 여러 장 있는데, 그의 자유로운 영혼과 왠지 잘 어울린다. 사진제공 이혜인 씨

-버드와의 일화에 자신만의 세계관이 담긴 것 같아요.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지만,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이랑 닮아있긴 하네요. 일에서도 솔직하게 대화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긴 합니다. 오래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충 넘어가지 않으려고 하기도 하고요. 결국은 모든 게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함께 일하는 사람, 프로젝트를 제안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본질이 아닌가 싶어요. 어떤 일이든 다 그렇겠지만요.”

-심오한 깨달음이 느껴지네요.
“아이고, 제가 뭐라고요. 그런 게 느껴지셨다면 아마 부모님 가르침이 배어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이만큼이라도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가족의 사랑 덕분이거든요. 아빠 엄마가 언제나 자식을 믿어주고 지켜봐주시는 것만큼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큰 힘이 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잘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항상 바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부모님한테 좋은 딸이고 싶기 때문이에요.”

-좋은 딸이 앞으로 꿈꾸는 목표는 뭔가요.
“건강한 삶이요. 결국은 사람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한 게 최고라는 걸 갈수록 많이 느껴요. 일이건 뭐건 건강해야 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삶의 균형을 잘 잡으면서 차근차근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내는 게 중요하단 생각을 요즘 많이 합니다. 전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그건 누구에게나 꿈이고 숙제이기도 할 텐데, 저 역시 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인거죠. 건축 역시 결국은 그걸 위한 게 아닐까 싶어요.”

[나의 옛날이야기] ‘요즘 (젊은) 것들’은  연재 글마다 청년들이 직접 고른 옛 사진들을 싣고자 합니다.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며 그 시절을 들춰보는 ‘코너 속의 코너’입니다. 이혜인 디렉터가 보내준 두 번째 사진은 1998년 스리랑카에 있는 Oversease School of colombo에 다닐 때 학교 친구들과 찍은 모습입니다. 맨 뒷줄 오른쪽에서 2번째 학생이 이혜인 디렉터로, 환하게 머금은 미소에서 그곳의 따뜻한 기온이 느껴지는 듯 하네요. 사진제공 이혜인 씨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