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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뺑뺑이’ 해결 위한 골든타임 [동아시론/김인병]

입력 | 2023-11-17 23:45:00

응급환자, 응급실 찾아 길에서 헤매는 상황도
선착순 아닌 중증도 따른 진료 문화가 필요
인력 증가 없으면 ‘응급실 폐쇄’ 올 수도 있다



김인병 명지병원 응급의료센터장·대한응급의학회 응급의료미래연구소장


의대 정원 증원 문제로 의료계뿐만 아니라 언론과 정치권 논의가 한창이다.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의료계 현안을 빨아들이고 있다. 소위 ‘응급실 뺑뺑이’라며 떠들썩했던 응급환자 이송체계 현안들 역시 관심이 이전보다 시들해진 것 같다.

응급의료 현장에서 30여 년 동안 환자들을 진료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시각에서, 현재 가장 국민들께서 걱정하고 계신 중증 응급환자 이송체계의 현황과 개선책을 논해 보고자 한다. 불과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응급실 과밀화가 국민들께 가장 피부에 와닿는 응급의료 문제였다. 응급실에 진료 받으러 왔는데 침상은커녕 보호자 대기 의자 한편에서, 심지어 응급실 바닥에 침대보를 깔고 누워 있기까지 했었다. 그때 응급실을 가리켜 ‘시장 바닥’ 같다고 했다. 정부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응급의료기관 평가를 매년 전국적으로 시행하며 과밀화에 관련된 지표를 중점 평가해 발표했고, 각 의료 관계기관들의 노력을 통해 과밀화는 점차 해결됐다.

앞서 코로나의 세계적 유행 속에서 응급실의 격리 시설이 갖춰진 침상 부족 문제가 대두된 적도 있다. 이제는 응급환자를 태운 119구급차가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응급의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밀하지만 응급실에서 응급환자를 억지로 수용했던 것이 맞는지, 아니면 응급실의 인력, 시설, 장비에 적정하게 응급환자를 수용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이제 과거로 되돌아갈 순 없다. 법률과 제도, 코로나 이후 의료 환경과 문화가 모두 바뀌었다. 우선 환자는 자신이 응급 증상인지, 비응급 증상인지 인지하고 판단할 수 없다. 이럴 때 국민들이 가장 먼저 신고하고 도움을 받는 기관이 119구급대다. 119구급대원은 주로 응급구조사, 간호사, 소방관으로 구성돼 있다. 그렇지만 아직 의료 현장에서 느끼는 바, 현장 평가와 처치, 이송에서 구급대원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내년 하반기부터 예정돼 있는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확대로, 부족하던 현장 평가, 처치 능력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소방청이 준비하고 있는 현장 중증도분류 도구(pre-KTAS)가 아무리 좋아도, 119구급대원의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면 효용이 떨어진다. 119구급대원의 현장 평가 역량 강화와 전문 응급처치 시행은 매우 기본적인 응급환자 이송체계의 시작이다.

119구급대원이 현장 평가를 적절히 시행한다고 해도 국민들의 비협조, 막무가내 이송 요구가 있으면 빛이 바랜다. 전국적으로 응급실 이용 환자의 80% 이상은 스스로 응급실을 찾는다. 일단 응급실을 내원하여 한국형 중증도 분류도구(KTAS)에 따라 경증·비응급 환자로 판단을 받게 되면, 응급실은 선착순 진료가 아니라 중증도에 따라 진료받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진료 순서를 차분히 기다리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의 틀 안에서, 현행 의료수가를 일시에 응급환자에 대해 인상할 순 없다고 할지라도 경증, 비응급 환자에 대한 자기 부담금 비율을 조정하는 방법으로 해당 환자들의 권역, 지역응급의료센터 유입을 조절하여 좀 더 중증, 응급환자 진료에 응급의료 자원이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응급실 의료진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절실하다. 인구 880만 명인 오사카부에 고도구급구명센터 16곳, 종합병원 응급실이 284곳이라는 사실이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우리나라의 응급의료 자원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 열악하다. 응급의학과 의사도 부족하고 응급실에 근무하는 간호사도 부족하다. 의대 증원으로 10년 뒤를 기다릴 여력이 없다. 응급실 환자 수당 간호사 수도 법적 강제를 통해서라도 증가시켜야 한다. 만약 작년 소아청소년과 같은 저조한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이 발생하고 한창 응급실 진료를 해야 하는 30, 40대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조용한 사직과 개원 흐름을 멈추지 못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응급실 뺑뺑이가 아니라 응급실 폐쇄의 악몽이 이 땅에 벌어질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에도 응급실 수용 거부 금지를 법제화하려 하고 있으나, 그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의대 정원 증원에 파묻혀 있기 전에 응급의료 현안 해결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한 후, 맞닥뜨린 ‘응급실 뺑뺑이’ 문제도 반드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해결해야 한다. 대한응급의학회는 대한민국 전체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학술단체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 언론과 같이 지혜를 나누고 의학적, 전문적 지식을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다. 중증의 응급환자 이송체계를 살리는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김인병 명지명원 응급의료센터장·대한응급의학회 응급의료미래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