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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치악산’ 노이즈 마케팅 대박 이어 흥행도 해피엔딩? [디지털 동서남북]

입력 | 2023-09-05 10:50:00

원주시 “이미지 훼손 우려…법적 대응”
제작사 “기우일뿐…지역에 도움 될 것”
일각에선 “양쪽 윈윈 해법 없나”




“영화 ‘치악산’ 때문에 주민 불안과 모방범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치악산이라는 명산을 전 세계 영화 관객들에게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영화 ‘치악산’의 포스터. 도호 엔터테인먼트 제공

13일 개봉 예정인 공포 영화 ‘치악산’을 둘러싼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강원 원주 치악산의 구룡사와 농축협 등 4개 단체와 원주시가 각각 서울중앙지법에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한데 이어 원주지역 시민단체들이 연일 기자회견을 열고 상영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원주시와 지역 주민들이 이처럼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은 ‘치악산에서 18 토막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허구의 괴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로 인해 지역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원주시는 최근 ‘트레킹 도시’라는 비전을 선포했고, 치악산 둘레길을 찾는 발길도 늘고 있는 상황에서 관광산업에 찬물을 끼얹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또 치악산 브랜드를 사용하는 농특산물 판매에도 악영향을 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몸이 단 원주시에 비해 영화 제작사 측은 상대적으로 느긋해 보인다. 이들은 원주시의 반응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지역을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반박한다. 또 창작성 작품인 치악산이 마치 공공성 이미지 훼손의 결과물인 것처럼 전파돼 본 작품의 개봉에 심각한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원주시는 제목 변경과 ‘치악산’이 들어간 대사 수정 및 삭제 등을 요구했지만 제작사는 지난달 29일 공문을 통해 불가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해줬다. 제작사는 이미 포스터, 예고편, 광고물 등이 제작됐고, 개봉을 2주일 앞둔 시점에서 제목을 변경하는 것은 수용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또 치악산 대사를 삭제한다는 것은 전체 영화의 플롯(plot)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원활한 극중 이야기 전개가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제작사는 지난달 31일 서울에서 시사회를 마친 뒤 “제목 변경은 가능하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원주시의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치는 반응이었다.

원주시보훈단체협의회 회원들이 4일 원주시청 브리핑룸에서 영화 ‘치악산’의 개봉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원주시 제공

이 시점에서 떠오르는 궁금증 하나. 제작사는 과연 이런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비슷한 사례의 공포 영화 ‘곡성(2016년)’과 ‘곤지암(2018년)’을 보더라도 이같은 마찰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원주에서는 의도적인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18개의 토막 시신이 담긴 잔혹한 모습의 비공식 포스터까지 일찌감치 인터넷에 올라오자 의문은 의심으로 변했다.

제작사 측은 이를 부인했지만 결과적으로 노이즈 마케팅이 이뤄진 것은 인정했다. 제작사 관계자는 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정도 반발은 예상하지 못했고, 노이즈 마케팅을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노이즈 마케팅이 돼 버렸다. 하지만 노이즈 마케팅의 시작은 우리가 아니라 원주시다. 원주시가 문제 제기를 하면서 노이즈 마케팅에 불을 붙였다”고 말했다.

당초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영화의 마케팅은 속칭 ‘대박’이 났다. 연일 언론에서 원주시와의 갈등을 보도하면서 영화는 막대한 홍보 효과를 누렸다. 순제작비 10억 원 미만이 투입된 저예산 영화로 알려진 치악산은 돈 안 들이고 엄청난 홍보를 한 셈이다.

영화 ‘치악산’의 한 장면. 도호 엔터테인먼트 제공

두 번째 궁금증. 치악산은 노이즈 마케팅에 이어 흥행도 성공할까. 영화 ‘곡성’은 687만 명, ‘곤지암’은 267만 명이 찾아와 대박을 터뜨렸다. 특히 곤지암은 순제작비 11억 원의 저예산 영화로 투자에 비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치악산도 뛰어난 사전 마케팅 효과를 거둔 만큼 작품성과 공포의 수위 등 흥행성만 받쳐준다면 충분히 기대해 볼 만하다.

이인모 기자

그렇다면 원주시는 손해만 보게 될까. 법원이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영화는 예정대로 개봉될 것이고 원주는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원주가 손해를 안 보려면 원주시의 예상이 빗나가고, 제작사의 예측이 들어맞아야 한다. 제작사 측은 대한민국 관객의 의식 수준이 높아져 ‘괴담’과 ‘현실’을 충분히 구분할 수 있고, 곡성과 곤지암이 개봉된 후 많은 관광객이 지역을 찾았다고 밝혔다. 또 출연 배우들을 원주 홍보대사로 활용하는 등 원주의 이미지 제고에도 힘쓰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영화 흥행이 성공하고, 영화 덕분에 원주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해피엔딩이다. 영화와 지역이 윈윈한 영화 명단에 치악산이 오르기를 기대해본다. 서울중앙지법은 상영금지가처분신청 사건의 심문을 8일 오전 10시 진행한다.


원주=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