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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서로 얼굴만 봐도 “혐오감…화가 난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입력 | 2023-09-02 15:00:00

우리는 왜 서로를 혐오하나(2)




어지럽게 걸려 있는 정당 현수막들. 때로는 상대 정당을 향한 지나친 막말과 비난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어 또 다른 정치 혐오를 낳기도 한다. 동아일보 DB

‘불륜’ ‘도둑놈들’ ‘비리 비호’ ‘굽실굽실’
최근 공해 수준의 막말로 문제가 된 정당 현수막에 적힌 말들이다. 상대 정당을 견제하기 위한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에 가깝게 들린다. 상대 진영을 향해 무분별하게 드러낸 혐오감에 지켜보는 국민은 정치 자체에 혐오를 느끼기도 한다.

혐오스럽고 역겨운 느낌은 원래 배설물이나 썩은 물질 같은 진짜 더러운 것에 느끼는 감정이다(우리는 왜 서로를 혐오하나 1편 참고). 그런데 정치적 영역에서도 상대 진영을 향해 ‘더럽다’ ‘썩었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더럽고 썩은 것을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정치에서의 혐오는 사이를 더 멀어지게 만들고, 대화와 타협을 방해한다. 소모적 혐오를 거둘 방법은 없을까.

반대 정당 지지자 얼굴만 봐도 혐오감 느껴
정치 영역에서 혐오는 상당히 강력한 에너지다. 때로는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말 한마디 섞어 보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도 지지하는 정당 성향만 보고 많은 것을 판단해 버리게 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해 밑도 끝도 없이 “역겹다”는 혐오감까지 느낀다. 상대 정당 지지자라는 게 이유다.

지난 3월 미국 심리학회지에 ‘구역질 나는(disgusting) 민주당원, 역겨운(repulsive) 공화당원’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연구가 소개됐다. 영어 단어는 달라도 어쨌거나 서로 혐오스러워한다는 의미다. 양당제 정치 형태를 띠는 한국 상황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구는 공화당원 290명, 민주당원 31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들에게 남성 10명의 얼굴 사진을 보여줬다. 각각의 이름, 나이, 가족 관계, 취미 등과 함께 정치 성향을 알려줬다. 10명 중 각 절반씩 공화당, 민주당 지지자로 소개됐다. 예를 들어 ‘김○○ 씨는 40세이고, 부인과 자녀 2명이 있으며, 영화 감상이 취미이고,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식이다.

연구에서는 이름과 나이 등 기본적인 정보와 함께 정치 성향을 알려줬을 뿐인데, 얼굴 사진을 보고 정치 성향이 다를 경우 “역겹다” “화가 난다”는 반응을 보였다(사진은 연구와 직접 관계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연구에 참여한 600명에게 이들의 사진을 보고 무엇이 느껴지는지 답해보라고 했다. 혐오, 분노, 도덕, 신뢰와 관련된 질문 7개에 답하도록 했다. 답변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른 사진 속 인물에게는 ‘역겹다’ ‘혐오스럽다’ ‘화가 난다’는 답을 훨씬 더 많이 했다. 이와 반대로 자신과 정치 성향이 같은 인물에게는 ‘신뢰할 수 있다’ ‘도덕적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픽=안지현 기자 anji1227@donga.com

연구진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에게 분노와 혐오를 동시에 느끼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분노는 공격이나 대결, 처벌을 강조해서 분열을 조장하고, 혐오는 기본적으로 상대가 ‘더럽다’고 여기기 때문에 회피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갈등과 분열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서로 피하려 하기에 타협이 더 어려워지는 결과를 낳는다.

정치 성향 다르면…다친 사람보고도 “지나칠 것”
생긴 것만 보고도 혐오스럽다고 느끼는 관계에서 도움을 주고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어떤 경우엔 최소한의 인류애도 발휘되지 않는다.

누군가 넘어져 다쳐서 피 나고 아파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상상해보자. 인근에서 열린 정치 시위 농성에 참여했던 사람이 인파에 밀려 넘어진 것이다. 꽤 아파 보이는데 주변에 나 말곤 딱히 도와줄 사람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내가 싫어하는 정당을 상징하는 티셔츠를 입고, 나와 정반대의 정치적 입장이 적힌 농성 피켓을 가지고 있다. 계속 다가가서 끝까지 그를 도와줄 것인가? 혹은 외면하고 가던 길을 갈 것인가?

다친 시위 참가자가 나와 정반대의 정치적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즉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연구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돕지 않겠다”고 답했다. 뉴스1

이 같은 주제로 900명 넘는 이들에게 의견을 물어본 연구가 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심리학과의 요시 하슨 박사 연구팀은 이스라엘, 미국, 독일 3개국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서로에게 똑같이 공감할까?’라는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중도성향은 없었고, 전부 보수 또는 진보 성향이 뚜렷한 사람들이었다.

위와 같이 다친 시위 참가자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기사를 보여주고, 다친 사람이 △보수정당 지지자 △진보정당 지지자 △정치적 성향을 알 수 없는 마을 주민일 때 각각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그 결과 자신과 정치 성향이 같거나, 정치 성향을 알 수 없는 마을 주민이 다친 경우에는 나서서 돕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른 이가 다쳤을 땐 도와주겠다고 하는 빈도가 훨씬 줄었다. 이런 결과는 연구에 참여한 3개국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인격체 아닌 벌레 취급할수록 비정해져
다친 사람을 못 본 척 지나가겠다는 연구 결과는 차갑고 비정해 보인다. 정치 성향을 모르는 마을 주민을 돕겠다고 나서는 인류애는 있으면서, 왜 상대편에게는 잔인한 결정을 내릴까.

상대편을 인격체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충’처럼 벌레 취급하는 등 감정을 공유하는 인간으로 보지 않기에 더 쉽게 외면하고, 욕하고, 공격할 수 있다. 이는 신념과 행동이 모순될 때 나타나는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혐오나 차별은 나쁜 것’이라는 신념을 교육받고 자란다. 그래서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행동을 하면 신념과 행동이 모순돼 마음이 불편해지는 인지부조화를 겪는다. 이때 혐오 대상을 인간이 아닌 벌레, 쓰레기 취급하면 혐오와 차별이 타당성을 얻는다.

독일이 폴란드에 세운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당시 아돌프 히틀러는 유대인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세균, 쥐, 구더기 등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묘사했다. 휴머니스트 제공

이런 전략은 전쟁이나 대량 학살 범죄에서도 사용돼왔다. 적을 더러운 해충이나 짐승 같은 존재로 세뇌해서 사람에게 총을 겨누는 심리적 거리낌을 없애기 위해서다. 아돌프 히틀러도 유대인 학살에 이런 전략을 썼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세균, 고름, 쥐, 구더기, 오물 등으로 묘사했다. 그의 책 ‘나의 투쟁’에는 씻지 않는 유대인 냄새 때문에 배가 아팠다거나, 유대인은 ‘썩은 몸에서 농양을 베어내도 자꾸 나오는 구더기 같다’는 식의 혐오 표현으로 가득하다.

혐오 줄이는 법? ‘팩트 체크’로 오해 바로잡기
여러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 혐오감은 극단적 성향의 일부 사람들에 의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과격하게 발언하고 행동하는 일부가 평범한 다수보다 눈에 더 잘 띄어서다. 이런 오해는 어떻게 풀 수 있을까.

7월 3일(현지 시각)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가자시티에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이자, 이를 규탄하는 팔레스타인 남성들이 팔레스타인 기를 들고 항의하고 있다. 가자시티=신화 뉴시스

수 세기에 걸쳐 역사, 정치, 종교적 만성 갈등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관한 연구 결과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혐오와 폭력을 줄이는 의사소통 개입 방법을 알고 싶었던 이스라엘 히브리대 연구팀은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 305명과 아랍인 243명에게 폭격, 테러 등 ‘서로를 향한 폭력 행위를 얼마나 지지하는지’ 물었다. 답변을 듣기 전에 이들 중 절반에게 ‘유대인과 아랍인의 91%는 서로를 향한 폭력 행위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뉴스 기사와 정확한 수치가 담긴 데이터 자료를 보여줬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기사와 자료를 보여주지 않았다.

기사를 본 이들은 상대편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신도 ‘폭력에 반대한다’는 답변을 훨씬 더 많이 했다. 기사를 본 유대인 중에 ‘폭력에 반대한다’고 답한 비율은 기사를 보지 않고 ‘폭력에 반대한다’고 밝힌 유대인보다 2.6배 많았다. 아랍인의 경우 3.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서로를 향한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실관계를 알 때와 모를 때 정치적 견해가 달라질 수 있다. 서로 혐오하고 멀리하면서 대화를 거부할 땐 진실을 몰랐지만, 실체를 알고 나니 의견이 바뀌는 것이다. 연구팀은 “복잡한 절차 없이도 현실에 기반한 실제 데이터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오해를 푸는 효과가 있었다”며 “오해가 풀리면 집단 간 폭력성과 혐오를 멈추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반대로 우리 편 입장만 강조하는 선동적인 유튜브 또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콘텐츠만 소비하면 오해와 편견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혐오를 조장하고, 상대의 의견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콘텐츠는 경계해야 한다. 단단한 오해가 쌓인 관계일수록 단순한 사실관계를 아는 것만으로 혐오가 누그러질 수 있다고 하니, 어쩌면 대화와 타협은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