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부자도 돈 걱정을 한다

입력 | 2023-08-05 10:14:00

[돈의 심리] 서울 부동산 중윗값 10억 원… 부동산 비중 높으면 자산 의미↓




몇십억 원대 부동산이 있어도 돈 걱정 없는 진짜 부자로 살아가기는 어렵다. [GETTYIMAGES]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부자일까. 10억~20억 원 정도가 있으면 부자인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주위에서 이 정도 자산을 갖춘 사람을 보면 돈 걱정 없이 살지 못한다. 본인 스스로도 부자라고 생각지 않는다. KB경영연구소가 지난해 금융자산 10억 원이 넘는 성인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부자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자산이 100억 원은 돼야 부자라고 여겼다.


부자란 돈 걱정 않는 사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할까. 먼저 부자는 어떤 사람인지부터 알아보자. 부자에 대한 정의는 간단하다. 돈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 돈을 벌려고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부자다. 먹고사는 걱정 없이 일 자체가 좋아서 하는 사람 역시 부자다. 반면 일을 그만두면 먹고살 길이 막막한 사람은 부자가 아니다.

물건 가격에 상관없이 사고 싶은 것을 맘대로 살 수 있는 사람도 부자다. 반대로 특정 물건이 사고 싶지만 비싸서 망설여지거나 가격이 신경 쓰인다면 진정한 부자가 아니다. 파이어족은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지만 마음대로 지출할 수는 없다. 가령 월임대료 100만 원인 오피스텔과 상가를 2~3개 가지고 있으면 월 200만~300만 원 수입이 생긴다. 일하지 않아도 파이어족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 수입으로는 마음 가는 대로 지출할 수 없다. 파이어족이라 일을 하지 않지만 부자는 아닌 셈이다.

사람들이 돈이 많다고 할 때 그 기준은 보통 2가지다. 소득이 많거나 자산이 많은 경우다. 보통 연봉 1억 원 이상이면 고소득자로 분류된다. 연봉 2억 원이 넘으면 굉장한 부자로 여겨진다. 2020년 기준 연봉 1억 원은 한국의 소득 상위 4.4%이고 연봉 2억 원은 상위 1% 정도다. 이 정도면 충분히 부자 아닐까.

그런데 막상 연봉 1억~2억 원을 받는 사람은 본인이 부자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연 수입이 몇억 원에 달하지만 돈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계속 돈 걱정을 하는 사람을 부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수입이 많아도 돈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일단 수입은 있지만 집이 없는 경우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 중윗값은 10억 원이 넘는다. 연봉이 2억 원에 달해도 실수령액은 연 1억2000만 원 정도다. 월급을 모두 저축하더라도 집을 사는 데 10년이 걸린다. 반은 생활비로 쓰고 반은 저축하면 20년이 지나야 집을 살 수 있다. 도중에 대출받아 집을 산다 해도 어차피 대출을 갚기까지 20년이 걸린다. 그사이 생활비는 월 500만 원으로 한정된다.

무엇보다 이 수입으로는 돈 걱정 없이 소비활동을 할 수 없다. 한국에서 가격에 상관없이 자기가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으려면 연 수입이 2억 원 정도는 돼야 한다. 고깃집에서 한우 생갈비가 먹고 싶으면 그냥 시키고, 여행을 가고 싶으면 그냥 가고, 애가 학원에 가고 싶다고 할 때 학원비를 생각하지 않고 보내는 삶이다. 대략적으로 매달 1000만 원을 훌쩍 넘는 지출이 생기는데 그럼 최소 연봉 4억~5억 원은 돼야 한다. 연봉 4억 원일 때 세금 등을 제외하면 실수령액이 2억4000만 원 정도 되기 때문이다.

연봉이 4억 원을 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기업 사장급은 돼야 이 정도를 받는다. 문제는 이들도 본인이 진짜 부자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장은 정년 때까지 할 수 있는 직급이 아니다. 사장을 그만두면 바로 소득이 급전직하한다. 65세가 넘으면 국민연금을 받는데 최고액이 월 240만 원 정도다. 연봉 4억 원이 넘는 고소득자도 사장직을 그만두면 순식간에 저소득자가 돼버리는 셈이다. 현직에 있을 때부터 자산관리를 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연봉이 몇십억 원 이상이라면 은퇴 뒤에도 부자로 살 수 있다. 하지만 연봉 몇억 원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소득만 가지고는 부자가 되기 힘들다.



부동산 비중이 높은 한국 부자들


자산 규모 역시 부자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이 많은 경우 부자로 보기 때문이다. 한화생명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상위 1%의 순자산은 29억 원이다. ‘순자산 29억 원’이면 엄청난 부자 같다. 그런데 이 중 많은 사람이 부자의 삶을 살지 못한다.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이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가지고 있는데 돈이 없는 경우가 상당수다.

빌딩과 오피스텔, 상가 등을 갖고 있어 월세를 받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가령 부동산 자산이 30억 원인 사람이 있다고 치자. 30억 원이 모두 수익형 부동산인 경우 월세 10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10억 원 아파트에 산다면 수익형 부동산은 20억 원이 되고, 월세 수입은 600만 원으로 줄어든다. 살고 있는 아파트가 비쌀수록 월세 수입이 줄어드는 것이다. 실제 한국에서 순자산 상위 1%의 한 달 생활비는 월 500만 원이다. 가격을 고려하지 않는 소비생활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들 역시 가격을 확인하고 주어진 예산에서 지출할 수 있도록 항상 점검한다. 자산이 많아도 부동산 비중이 높다면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100억 원대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몇십억 원대 부동산 부자는 사실 부자로 살아가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은 부동산 외에 금융자산이 어느 정도인지를 기준으로 부자 여부를 판단한다. 금융기관은 보통 부동산 이외에 10억 원 이상 금융자산을 가진 경우를 부자로 본다. 금융기관의 주요 VIP 고객은 보통 금융자산 30억 원 이상을 가진 사람이다.

금융기관이 현금 등 금융자산을 특히 중시하는 이유는 이들이 잠재 고객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자산이 많은 사람은 현금이 부족하기에 금융기관에 맡길 돈이 별로 없다. 금융자산이 10억 원 이상인 사람은 금융기관에 돈을 맡길 수 있다. 금융기관이 금융자산을 기준으로 부자를 분류하는 이유다.



분명 부자로 보이는데…


얼마나 돈이 많아야 부자로 살 수 있을까. 객관적으로 볼 때 상위 1%에 해당하면 부자다.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연봉 2억4000만 원 이상인 사람이 부자다. 자산을 기준으로 하면 순자산 29억 원 이상이다. 금융기관 평가를 기준으로 하면 금융자산 10억 원을 넘는 사람인데, 이들은 2021년 기준 42만4000명 정도로 상위 0.82%에 속한다(그래프 참조).

이 사람들은 객관적 기준으로 보면 분명 부자다. 그런데 ‘진짜 부자’를 판단하는 기준인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 ‘가격에 신경 쓰지 않고 일상적인 지출을 할 수 있는 사람’ 등으로 보면 이들도 진정한 부자라고 보기 어렵다. 연봉 5억 원을 받아도 계속 일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순자산 30억 원이 있어도 고급 음식점에 가면 가격을 고려해 메뉴를 선택해야 한다.

분명 부자로 보이는데 막상 자신은 부자가 아니라는 사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100억 원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100억 원은 있어야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걱정이 없고, 돈 걱정 없이 마음대로 지출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서울 강남 아파트는 한 채에 50억 원이 넘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을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으려면 100억 원도 부족하다. 200억 원은 있어야 부동산도 돈을 고려하지 않고 살 수 있다.

돈 걱정 없이 사는 진짜 부자는 정말 드물다. 우리가 보기에 부자인 것 같은 사람도 모두 돈 걱정을 하고 돈을 아끼면서 살아간다. 부자들이 일반 사람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이들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01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