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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현실이 곧 영화”…미행, 스토킹 혐의 일당 잡고 보니 ‘연애 조작단’[사건 Zoom In]

입력 | 2023-07-24 03:30:00


의뢰인의 짝사랑을 이뤄주기 위해 ‘작전’을 짜서 실행해주는 업체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스틸컷. 명필름 제공


“이별하셨어요? 저희 ‘연애 작전단’이 운명적으로 재회하게 해드립니다.”

여성 A씨는 전 남자친구와 재회할 방법을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 이른바 ‘연애 컨설팅 업체’의 홈페이지를 발견해 이 같은 문구를 봤다. A씨는 곧 업체에 수백만 원을 내고 계약서까지 썼다.

업체 측은 전 남자친구를 몰래 미행해 동선을 파악하고, 운명적 상황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듯한 ‘작전’을 제안했다. 이 업체는 2010년 200만 명 넘는 관객을 모았던 ‘시라노; 연애조작단’과 같은 방식으로 영업을 해왔다. A씨는 영화의 한 장면을 현실에서 재현하려 한 것이다.

이 업체의 40대 영업실장은 20대 남성 직원 2명에게 3, 4월 업체 소유 차량으로 A씨의 전 남자친구 차량을 미행하라고 주문했다. 행동조는 전 남자친구 회사 앞은 물론 서울 동대문구의 자택까지 몰래 따라간 뒤 지하주차장에서 몇 시간 동안 기다리며 동선을 파악했다.

그런데 실장과 직원 2명은 “어떤 차량이 자꾸 내 차 뒤를 쫓아온다”는 피해자의 신고를 접수한 서울 동대문경찰서 경찰들에게 붙잡혔다. 경찰은 이들에게 공동주거침입 등의 혐의를 적용해 서울북부지검에 24일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해당 업체는 ‘업계 넘버 원’을 내세우며 연애 컨설팅, 재회 작전 등의 업무를 해 왔다고 한다. 사무실 압수수색에서 의뢰인 50여 명의 계약서도 발견됐다. 실제로 이 업체의 홈페이지엔 “덕분에 재회, 만남에 성공했다”는 후기가 한 달에 10개 안팎으로 올라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의뢰인은 20~40대로 거주 지역은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서 직원들은 “이 일이 불법인 줄 알았지만 실장이 ‘문제없다’고 해 1년간 월 150만 원가량 받고 아르바이트해 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장은 “피해자가 큰 충격을 받을지는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의뢰인 A씨는 피해자와 합의해 처벌을 면했다.

경찰 관계자는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된 스토킹범죄처벌법이 개정 시행돼 11일부터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르면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스토킹 혐의로 처벌받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