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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기의 비애[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91〉

입력 | 2023-04-19 03:00:00


김소월의 스승이었던 안서 김억은 시인이면서 선구적인 번역가였다. 대부분의 번역이 일본어 번역본을 중역하는 상황에서 그는 원전 직역의 물꼬를 텄다. 일제강점기에 일종의 탈식민적 번역을 한 셈이다. 그는 서구의 시들은 물론이고 중국과 조선의 한시까지 우리말로 옮겼다. 그중에서도 여류시인들의 시를 많이 번역했다. 가장 유명한 것이 당나라 시인 설도(薛濤)의 시를 옮긴 ‘동심초’다. 김성태가 곡을 붙여 더 유명해진 시.

원제목은 동심초가 아니라 ‘봄을 기다리는 노래’라는 의미의 ‘춘망사(春望詞)’다. 김억은 네 개로 된 시 중 하나만을 번역해 ‘동심초’라고 제목을 붙였다. “꽃잎은 하욤없이 바람에 지고/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랴는고.” 3행과 4행의 동심인(同心人)과 동심초(同心草)라는 표현에서 동심은 ‘한마음’이라는 의미다. 마음과 마음이 하나로 묶여야 사랑인데, 시인은 그러하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묶으며 기약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삭인다. 그 마음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시인이 부모를 일찍 잃고 관기(官妓)로 살았던 여성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해도 보통 사람처럼 사랑할 수 없는 게 관기의 숙명이요 비애였다. 남자는 떠나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시로 위안을 삼았다.

김억은 이런 시가 진짜 시라고 생각했다. 그는 좋은 시를 ‘사무사(思無邪)’, 즉 생각에 꾸밈이 없는 경지에 빗댔던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소실이나 기생의 시를 높이 평가했다. “사대부집 아낙네들의 노래에는 어째 그런지 일부러 감정을 눌러 버리고 점잖은 채 꾸민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의 말이 맞다면 그들의 노래는 ‘낙제’이고 감정에 거짓이 없는 소실이나 기생의 노래는 ‘급제’였다. 제도가 보장하는 안정된 삶이 아니라 한스러운 삶을 살았던 여인들에게서 나오는 순도 높은 감정이 서정시의 본질에 가깝다는 의미였다. 번역가 김억이 일깨우는 예술원론이랄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