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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수도·가스비까지 올라… 사라져가는 동네 목욕탕

입력 | 2023-01-03 20:46:00

한겨울에 씻을 곳 없는 취약계층 “하루라도 마음 편히 씻고 싶어”




“새해를 맞아 하루라도 마음 편히 씻고 싶은데 물도 끊기고 목욕탕도 멀리 있으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네요….”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부엌칼로 연신 얼음을 부수던 주민 최소임 씨(95·여)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최 씨는 영하 10도의 한파가 며칠째 이어지면서 일주일 넘게 물이 끊기자 주변의 얼음을 녹여 물을 구하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이 끊기면 근처 목욕탕에 가서 씻기라도 했는데 최근에 문을 닫아 씻을 곳이 없다”며 “냉골 바닥은 전기장판과 연탄으로 버틸 수 있지만 씻지 못하는 건 견디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주민 최소임 씨(95·여)가 부엌칼로 얼음을 부수고 있다. 최 씨는 한파로 수도관이 얼어붙어 물이 일주일 넘게 끊기자 얼음을 녹여 물을 구하고 있었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 한파로 물 끊긴 주민 “새해 목욕도 어려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재확산에 가스 및 수도요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동네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주거 취약계층은 새해를 맞아 목욕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서울시 목욕장업 인허가 정보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된 2020년 3월 이후 이달 3일까지 서울 지역 목욕탕 231개가 문을 닫았다. 구룡마을 인근에선 1987년부터 영업을 해오던 ‘장수 목욕탕’이 지난해 문을 닫았다.

인근 주민센터에서 빌려온 소형 스팀기로 얼어붙은 수도관을 녹이던 구룡마을 거주 30년 차 주민 최모 씨(71)는 “지난 새해 물이 끊기면 주민들이 모여 근처 목욕탕에 가곤 했는데 이젠 버스로 20분 넘게 가야 목욕탕에 갈 수 있다보니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주민 안이수 씨(77)는 “인근에 목욕탕이 있을 때는 수도관이 얼어도 큰 걱정이 없었는데 지금은 꼼짝없이 못 씻는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서울 중구 동자동 쪽방촌 인근에서도 같은 기간 목욕탕 6곳 중 3곳이 문을 닫았다. 45년째 쪽방촌에 살고 있다는 주민 이천상 씨(71)는 “목욕탕이 하나둘씩 없어지면서 앞으로 씻을 곳이 남아있을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주민 홍홍임 씨(63)는 “그나마 목욕비가 저렴했던 목욕탕은 없어지고 영업 중인 목욕탕 요금은 지난달 6000원에서 8000원으 올라 부담이 크다”고 하소했다.


● 목욕탕 “월 공과금 300만 원 올라 죽을 맛”


목욕탕 관계자들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거리 두기와 공과금 인상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인근에서 목욕탕을 운영하는 최영섭 씨(70)는 “한 달 수도비와 가스비가 원래 700만 원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1000만 원 넘게 나와 인건비도 못 건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개미마을 인근 다른 목욕탕 관계자는 “공과금도 오르고 손님도 줄어 1인당 1만 원은 받아야 수지가 맞는데 단골 어르신을 생각해 7000원씩 받다 보니 적자만 쌓이고 있다”며 “영업을 그만두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새해를 맞아 목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개미마을 주민 A 씨는 “10년 넘게 여기만 다녔고 근처에 목욕탕도 없는데 문을 닫으면 곤란하다”며 “평소에도 주민들이 모여 동네 사랑방같이 지내던 곳이라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