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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더라면 서운했을 국가대표 박규철의 성공비결[광화문에서/황규인]

입력 | 2022-07-09 03:00:00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만 서른한 살에 처음 국가대표가 된 선수는 ‘에이스’라고 불리기가 쉽지 않다. 10년간 소프트테니스(정구) 대표로 활동한 박규철(41)도 그랬다. 한국 남자 정구 에이스를 꼽으라면 그보다 김동훈, 김범준 같은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박규철 본인도 한계를 느낄 때가 적지 않았다. 2006 도하 아시아경기 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진 뒤 그는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다. “군대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소속팀 달성군청을 나온 그는 교원 임용시험을 준비했다.

그렇게 4년간 코트를 떠났던 그에게 다시 라켓을 쥐여준 건 제대 두 달 전 결혼식을 올린 아내였다. 진로를 고민하던 박규철에게 아내는 “그냥 평생 제일 잘하던 일을 계속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1년만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자”고 마음을 비운 덕이었을까. 그는 운동을 새로 시작한 지 1년 만에 대표 선수가 됐다. 처음 라켓을 잡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따지면 23년 만의 결실이었다.

물론 대표팀에도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박규철을 비롯한 한국 남자 대표팀은 2014 인천 아시아경기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취재진의 질문은 대회 3관왕을 차지한 김범준을 향했다. 정구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니기에 아시아경기가 가장 관심을 받는 대회다.

이후로도 박규철은 홀로 관심을 받은 적이 없다. 2015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관왕을 차지했을 때는 남자 복식 파트너 이수열, 혼합 복식 파트너 김애경과 함께 얼마 되지 않는 관심을 나눴다. 2019 타이저우 대회에서 세계선수권 혼합 복식 2연패를 달성했을 때도 16세 차이가 나는 파트너 문혜경이 더 주목을 받았다. 박규철이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국무총리기 전국대회 기간이던 지난달 20일 열린 본인 은퇴식이 사실상 처음이었다.

한국 대표로 국제대회에 참가한 선수는 성적에 따라 경기력향상연구연금(체육연금) 점수를 받는다. 박규철이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4, 은 3, 동 4개를 따내며 받은 연금 점수는 178점. 한국 정구 역사상 이보다 연금 점수를 많이 쌓은 선수는 없다. 체육훈장 수상 기준이 되는 훈장 점수 2315점 역시 한국 정구 최고 기록이다. 박규철은 단식 우승 한 번 없이 이런 기록을 남겼다. 김은식 작가는 자기 책 ‘돌아오지 않는 2루 주자’에 “때로 사람들은 야구 선수 또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는다. 그래서 세상 사람 모두가 알 만한 업적을 남기지 못하면 ‘선수도 아니라는’ 철없는 생각도 가끔 한다. 그들 중 누구도 세계 최고의 샐러리맨, 세계 최고의 학생이거나 세계 최고의 주부로서 번듯한 기록 하나 세워놓지 못했음에도, 저마다 글로 풀자면 책 몇 권을 써도 부족한 감동과 희열과 분노를 품은 귀한 삶들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는다”고 썼다.

박규철은 혼자서는 에이스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확실한 세계 최고 복식 파트너였고 그 덕에 한국 정구 역사상 최고 선수로 유니폼을 벗을 수 있었다. 이런 선수라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글로 풀어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 아닐까. 수원시청 코치로 새 출발 하는 박규철의 앞날에 행운을 빌어 주시기를 독자 여러분께도 부탁드린다.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