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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쇄 ‘새의 선물’… 제겐 빛이자 그림자”

입력 | 2022-05-31 03:00:00

소설가 은희경 100쇄 기념 간담회
“27년간 한번도 고치지 않은 작품… 앉은뱅이책상 등 비하 표현 다듬어”



3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은희경 소설가는 “지금 살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이야기를 포착하고 쓰기에 저는 ‘현재의 작가’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 뉴시스


소설가 은희경(63)은 30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장편소설 ‘새의 선물’(문학동네) 100쇄 기념 개정판 작가의 말을 다시 읽었다. 공을 들여 쓴 글이었지만 그의 눈엔 고치고 싶은 부분이 또 보였다. 그는 농담을 소설에 쓸지 고민하는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며 이는 농담과 자신 사이의 ‘눈치 게임’이라고 비유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시소게임’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의미에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기 위해 27년간 글과 씨름을 해온 중견 작가다운 고민이었다.

은희경은 3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의 선물’은 오늘 아침까지 작가의 말을 고치고 싶은 고민이 들 정도로 각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며 “1995년 작품이 처음 출간된 후에 전체를 다 읽은 것도, 고친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100쇄 기념판은 다음 달 3일 출간된다. 문학동네에서 100쇄 출간된 작품이 나오는 건 2007년 안도현 시인의 우화소설 ‘연어’ 이후 15년 만이다.

“마감 전까지 책을 끊임없이 고쳐요. 고치고 싶은 욕망이 강한 만큼 이미 출간된 작품을 읽는 일은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도 개정판을 낸 건 27년간 절판 없이 100쇄까지 이어진 작품에 대한 애정 때문입니다. 27년 전 나와 지금의 내가 공동작업을 했기 때문에 ‘이제 이 책은 누구에게도 선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의 선물’은 12세 소녀 진희가 가족과 이웃들을 관찰하는 성장소설이다. 은희경 특유의 위악적인 시각이 넘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직후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은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됐다. 하지만 대표작이 첫 작품이라는 굴레를 던져버리기도 힘들었다. 그는 “‘새의 선물’은 제게 멀고도 환한 빛이자 길고도 희미한 그림자”라며 “이 작품이 꾸준히 팔린 덕에 작가로서 생활이 안정적이었지만 발밑에 한계의 동그라미가 그려진 느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개정판은 초판과 내용, 주제 의식이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사회의식이 변화함에 따라 독자들이 불편해할 수 있는 표현을 다듬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담은 ‘앉은뱅이책상’은 ‘좌식책상’으로 바꿨다. 애칭으로 썼지만 얼굴에 흉터가 있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곰보 아줌마’는 ‘아줌마’로 손봤다. 그는 “1990년대엔 문제없이 받아들여졌던 특정 단어나 표현이 현재엔 누군가를 비하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당시 시대상을 살리기 위해 남겨둔 부분도 있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그는 웃으며 답했다.

“지금은 ‘몸’에 대한 장편소설을 준비 중입니다. 몸이라는 건 인간이 가진 조건이자 타인과 관계 맺기를 위한 필수적 요소입니다. 동시에 세상의 평가, 왜곡, 오해의 출발점이에요. 앞으로도 젊었을 때 쓰지 못했던 이야기를 계속 열심히 쓰고 싶어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