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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대각선 연상시키는 ‘졸속’ 형소법 개정[오늘과 내일/정원수]

입력 | 2022-05-10 03:00:00

인권·수사 편의의 조화 찾아간 제정 형소법
개정안은 ‘대통령 거부권’ 피하려 허점 노출



정원수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이른바 ‘검수완박법’인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 제안 취지에는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 속기록에 따르면’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 분리가 오랜 시대 과제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전체 속기록을 찾아 보면 이런 문구를 왜 사용한 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형사소송법 초안은 6·25전쟁 중이던 1952년 4월경 나왔다. 초안을 마련한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피란 중에 밤에 불이 없으면 머리로 숙려 고찰하고, 불이 있으면 외국 서적과 나의 생각을 비교했다”고 할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국가의 근간이 되는 법을 빨리 만들기보다 제대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정부가 1953년 1월 법안을 제출하자 국회가 약 1년 뒤 공청회를 열었다. 당시 공청회에서 법사위 소속 의원은 형사소송법의 원칙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권을 옹호하려면 범죄수사와 형사재판이 편리하게 되지 않는다. 범죄수사의 정확성을 기하려면 신속할 수 없고, 신속을 기하려면 정확할 수 없다. 네 개의 원리를 대각선으로 그려 놓고 조화점을 어디에 두느냐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되, 국가형벌권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아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균형을 찾아 달라는 취지였다.

형사재판과 범죄수사의 당사자인 대법관, 검찰총장이 공청회에 나와 각각 의견을 냈다. 국회에서 정부안을 일부 고친 법안이 1954년 2월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정부안과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같은 해 3월 국회는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원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6개월 뒤에 공포됨으로써 첫 형사소송법이 시행된 것이다.

정부안과 국회 수정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국회 재의 과정을 보면 대각선의 균형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벤치마킹 대상이던 세 종류의 해외 사례는 7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이나 그때나 큰 차이가 없다. 경찰과 검사가 대등하게 수사권을 갖거나, 검사의 지휘를 받아 경찰이 수사하거나, 수사는 경찰에, 기소는 검사에게 맡기는 방안이다. 정부안은 당시 일부 경찰의 횡포에 대한 반발 심리로 검찰이 경찰을 통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국회는 정부안을 토대로 하되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하면 법원의 판단을 다시 구할 수 있도록 검찰 수사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 대통령은 경찰 조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신속한 수사에 방해가 된다며 국회에 재의를 요청했다.

정부와 국회, 대통령이 절차를 지키면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한 뒤 탄생한 제정 형사소송법은 그 이후 70년 가까이 기본 틀이 유지됐다.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은 어땠나. 한마디로 이상한 대각선이 그려졌다. 검찰의 수사권을 일시적으로 경찰에 넘기고, 최종적으로 어떤 수사 기관에 넘길지를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더 많은 권한을 갖게 된 경찰에 대한 통제 방안은 논의하지 않았다.

정권 교체가 되면 대통령 거부권 때문에 법안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이유로 국가의 형사사법제도를 속전속결로 바꾼 것부터 잘못됐다. 검찰 권한을 어디로 넘길지, 수사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를 공청회와 상임위에서 치열하게 토론해 법안의 완결성을 높여야 했다. 정치세력이 재편되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법안으로는 검찰개혁이라는 시대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