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사람들은 흔히 물건의 가치를 평가할 때 진품 여부를 가장 먼저 따진다. 진품명품이나 ‘전당포 사나이’ 같은 골동품의 값을 매기는 프로그램에서도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진품 여부다. 이 진품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무한정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사회가 도래했어도 여전하다. 오히려 디지털로 만들어지는 인터넷상의 파일도 ‘대체불가토큰(NFT)’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거래되고 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진품을 좋아할까. 정말 모방한 것은 천대받고 쓸모없는 것일까. 사실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작품을 모방하며 살아왔다. 고고학이 전하는 진품과 가짜의 기원과 그 의미를 생각해 보자.》
흉노 조공에 가품 보낸 한나라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유방)는 백등산에서 흉노의 강력한 군대에 치욕적인 패배를 기록했다. 그리고 약 200년간 북방의 오랑캐에게 굴욕적인 조공과 공물을 매년 바쳐야 했다. 역사 기록에도 당시 한나라가 매년 바친 목록들이 남아 있다. 그 목록은 공녀는 물론이요, 진기한 과일과 고급술의 목록이 정말 자세하게 적혀 있다. 약간이라도 소홀하면 화를 겪을까 두려워하던 중국 조정의 걱정과 꼼꼼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발굴을 해보니 흉노인들이 진짜 좋아하던 중국제 물건은 따로 있었다. 바로 칠을 한 그릇이었다. 중국의 칠그릇은 나무를 깎아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옻칠을 한 것이다. 양쪽 주둥이에 손잡이가 달렸고 가볍다. 마치 일회용 컵처럼 포개서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니 유목민들에겐 안성맞춤이다. 말을 타고 사방을 다니는 흉노인은 때가 되면 중국에서 받은 고급술과 이 잔을 부하들에게 하사하며 충성심을 다졌다.
흉노의 왕족고분에서 발견된 한나라의 칠기 그릇(위). 그릇 바닥에는 한나라의 궁궐인 ‘상림(上林)’이란 글씨가 쓰여 있지만 가품 가능성이 크다. 강인욱 교수 제공
사실 흉노가 한나라에 매년 요구하는 조공의 물량이 엄청나서 한나라의 재정에 막대한 피해가 갔다. 때로는 제때 공급을 못 하는 경우도 일어났다. 그러니 황실의 공방이 아니라 사제 공방에 하청을 주고 납품을 받은 것이다. 그러는 중에 가품을 진품과 섞어서 흉노에게 납품을 한 것이다. 어쨌든 이 사제 공방에서 만든 칠기 그릇을 적절히 섞어 주면서 한나라는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200여 년간 별 탈 없이 흉노에게 조공을 하여 안심시킨 끝에 결국 한무제 때에는 대대적인 반격을 가해서 흉노를 몰아낼 수 있었다. 가히 중국을 구한 가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韓도 모방한 中 청동거울
적절하게 모방을 한 것은 그 물건이 널리 사용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남한에서는 고조선이 멸망한 직후 중국과 직접 교역하게 되면서 중국의 귀중품들이 크게 사랑받았다. 이때에 삼한의 우두머리들은 중국에서 사온 관리의 옷과 도장, 그리고 중국제 명품을 쓰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그런 귀중품을 몸에 걸치고 의식에 참여하면 자신이 마치 중국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인 양 과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 한나라에서 유행한 청동 거울은 한국과 일본, 멀리 동유럽에서도 인기였다. 진품을 모방한 ‘모방 거울’ 제작도 활발했다. 강인욱 교수 제공
그런데 중국의 명품을 서로 원해 수요가 많아지면서 부담이 심해지게 되었다. 그 대안으로 모방을 한 거울이 널리 사용되었다. 이 모방 거울(방제경)은 특히 삼한이 있었던 약 2000년 전경에 경상남도 일대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얼핏 보면 중국의 거울과 많이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무늬가 조잡해 차이가 난다.
모방하며 생존, 진화한 인류
독일 홀렌슈타인-슈타델 동굴 유적에서 출토된 사자 머리를 한 인간상. 샤먼(주술사)은 다양한 동물로 빙의해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이렇듯 모방은 인간의 특권이자 진화와 생존에서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진품’에 열광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진품’은 실제 심미적인 가치보다는 아름다움을 독점하려는 인간들의 욕망에 값이 매겨진 것이다. 원본과 가품의 차이가 전혀 없는 디지털 세계에서마저 ‘진품’이 등장할 정도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하지만 고고학이 증명하듯 인간은 서로서로 베끼면서 진화해 왔다. 적절하게 새로운 기술과 물건을 모방해서 우리의 삶에 도입하면서 우리는 생존해 왔다. 원본을 갈망하는 속마음은 결국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을 남과 차별화하려는 것이니 우리 인생에서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기준은 결국 우리의 욕망이 아닐까.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