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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과 김건희, 대선 후보 부인들이 ‘단발머리’ 하는 이유는…

입력 | 2022-01-08 13:22:00

[이재명-윤석열 미셀러니]
소탈하면서 지적인 이미지 부각 vs 중단발로 여성스러운 이미지 고수




앞머리를 자를까 말까. ‘여자의 평생 고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헤어스타일에 대한 여성의 관심은 대단하다. 실제로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iN에서 ‘앞머리 자를까 말까’를 검색하면 2002년부터 2021년 12월 중순까지 올라온 고민 글만 1000건이 넘는다. 이마저도 최대 노출 한도가 1000건까지라서 나온 결과다.

대선 후보 부인들도 이런 고민을 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머리는 인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위다. 하객으로 잠깐 머무를 결혼식에 갈 때도 미용실을 찾는 이가 많을 정도이니, 대선이라는 최대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머리를 허투루 만질 수는 없는 노릇. 흑백TV에서 컬러TV로 바뀐 이래 ‘이미지 정치’가 한층 중요해진 상황에서 대선 후보 부인의 헤어스타일 선택 역시 단순히 ‘잘 어울려서’라기보다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으로 이해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김혜경 씨 헤어스타일 변화. 2018년(왼쪽)과 2021년 모습. 동아DB, 이재명 캠프


김건희 씨 헤어스타일 변화. 과거와 최근(2021년 12월) 모습. 김건희 SNS, 동아DB







머리 자른 대선 후보 부인들


여야 유력 대권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 중 최근 헤어스타일 변신으로 화제가 된 건 윤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다.

김 씨의 트레이드마크는 긴 생머리와 ‘애교머리’로 불리는 옆머리, 이마를 덮는 앞머리였다. 쿠팡플레이 웹예능프로그램 ‘SNL 코리아 시즌2’에서도 배우가 비슷한 스타일의 가발을 쓰고 김 씨 코스프레를 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15일 본인이 운영하는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 사무실 앞에서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을 때만 해도 김 씨는 긴 머리였다. 2년 넘게 이 스타일을 고수하던 그가 머리를 자르고 앞머리를 넘긴 채 대중에 선 건 그날로부터 11일 뒤인 26일, 본인을 둘러싼 ‘허위 이력 의혹’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자리에서였다.

길이가 긴 C컬 단발로 카메라 앞에 선 김 씨는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고 사과문을 읽었다. 윤 후보 내외에게 유쾌했을 자리는 아니지만 지지자 사이에서는 “이제 좀 정치인 아내 이미지 같다” “영부인 느낌이 난다”는 평이 나왔다. 이전부터도 윤 후보 주변에서는 “김 씨가 머리를 단정히 정리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의 아내 김혜경 씨는 지난해 7월 광주 전남대에서 열린 청년 행사에 참석했을 당시 포니테일(뒤로 하나로 묶은 머리) 스타일을 선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머리를 자르고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 이마를 드러낸 C컬 단발을 유지하고 있다. 이 후보가 경기 성남시장 후보였던 2010년에는 앞머리가 이마를 덮는 귀밑 짧은 단발이었다. 2018년에는 길이는 그대로이나 헤어 볼륨은 한결 풍성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정숙(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윤옥(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여사를 비롯한 역대 영부인의 헤어스타일을 살펴보면 육영수(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여사 같은 올림머리를 제외하고는 앞머리가 없는 C컬 단발이 많다. 박영선, 나경원, 심상정 등 여성 정치인도 즐겨 하는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영부인과 ‘영부인 지망생’, 여성 정치인이 단발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단발과 올림머리로 대표되는 영부인 헤어스타일. 왼쪽부터 김정숙(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윤옥(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여사. 동아DB





고작 머리털? 단발의 함의


한국 근대 여성사에서 단발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한 장발 문화에 파장을 일으킨 헤어스타일이다. 최초 ‘단발 여성’은 1922년 6월 경성 화류계에서 이름난 기생 강향난이다.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강향난은 애인의 변심 후 “남자에게 의존하며 동정을 구하던 지난날을 잊고 남자와 똑같이 당당하게 살겠다”는 의지로 단발을 감행했다. 이후 강향난은 기자로 활동하며 여성운동에 힘쓴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사당이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오랫동안 미용실을 운영한 A 씨는 “정치인은 뽀글뽀글한 파마보다 그때그때 드라이를 해 자연스러운 느낌과 부피감을 살린다. 전형적인 ‘손이고’(손님 이건 고데기예요) 스타일”이라며 “컬링 정도에 따라 이미지 변화를 주기에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선거운동 등으로 대중을 만날 일이 많은 시기에는 새벽에 집으로 출장을 부르기도 하고, 지방에서 소화하는 일정이 많을 때는 현장에 따라다닐 사람을 따로 고용하기도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의 스타일링 컨설팅을 한 윤혜미 퍼스널 브랜딩 전문가는 “사회성과 지적 이미지, 우아함을 표현할 수 있는 단발은 개화기 신여성의 상징”이라며 “과거 전통적 여성 제도와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의식 변화가 구체적 행동양식으로 나타난 게 단발”이라고 설명했다.

윤 전문가는 “김건희 씨의 단발은 기존 단발보다 길이가 길고 컬도 큰데, 정치활동을 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아직 여성성을 완전히 놓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어 그는 “김혜경 씨는 소시민적 성격을 부각하기 위해 소탈한 이미지를 고수하는 게 좋고 우아한 이미지도 포기할 수 없기에 지금 헤어스타일이 최선이다. 특히 광대와 입이 나온 편이면 앞머리를 넘긴 단발이 결점을 보완하기에도 좋다”고 말했다.

“앞머리가 있으면 시선이 입으로 가는데 앞머리를 올리거나 넘기면 시선이 눈으로 가게 돼요. 결혼식에서 신부가 올림머리를 하거나 남자들이 올백 스타일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죠. 입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눈은 거짓말을 할 수 없거든요. 신뢰도를 한층 높이는 헤어스타일입니다.”


지위가 머리를 만든다

미국 영부인 시절 힐러리 클린턴(왼쪽)과 미셸 오바마. 동아DB


같은 사람이어도 지위와 상황에 따라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머리로 표현하기도 한다. 힐러리 클린턴(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인)이 영부인이었을 때와 상원의원, 장관, 대선 후보였던 시절을 각각 비교해봐도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전에 힐러리는 외모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탓에 워싱턴 정가에서 뒷말이 계속 나오자 영부인 시절 내내 전속 헤어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해 볼륨감 있는 단발을 유지했다. 2000년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했을 땐 짧은 단발이었다. 국무장관 재임 시절에는 머리를 기르고 중단발을 유지했다. 2016년 미국 대선 후보 당시에는 다시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활동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미셸 오바마(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인)는 백악관 생활 8년 동안 잘 펴진 단발을 고수하다 자연인이 된 후에는 ‘아프로헤어’(흑인 특유의 곱슬곱슬한 모발을 둥근 모양으로 다듬은 헤어스타일)를 선보이기도 했다.

정치인과 기업가를 대상으로 오랫동안 이미지 컨설팅을 해온 퍼스널이미지브랜딩LAB&PSPA의 박영실 박사는 김건희 씨의 헤어스타일 변신을 두고 “정치적 이미지 전략 면에서 본다면 당연하고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잘 정돈된 중단발의 인컬(in curl)은 정숙한 이미지를 줘 재클린 케네디(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부인)부터 힐러리 클린턴, 미셸 오바마까지 역대 미국 퍼스트레이디들이 선호해온 스타일이에요. 실패하지 않는 무난한 머리죠. 한국 영부인은 한복을 입을 일도 꽤 있는데, 올림머리를 하기도 쉬운 길이라 다양한 스타일 연출이 가능합니다.”

김혜경 씨의 헤어스타일에 대해서는 “과거에는 짧은 단발 파마를 주로 하다 최근 어깨를 넘는 아웃컬(out curl) 긴 단발을 했다. 아웃컬은 인컬보다 더 활동적이고 역동성 있어 보이는 효과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볼륨에 담긴 정치 메시지


정치인 외에도 많은 여성 기업가와 대학 총장은 왜 머리에 ‘뽕(볼륨)’을 살리는 걸까. 역사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는 박 박사는 “과거에는 가체(머리 장식)가 클수록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는데 가체를 쓰지 않는 지금은 머리 볼륨이 가체를 대신한다”며 “이는 권위 있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임을 머리로 표현하는 것으로, 국내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머리 부피감은 굉장히 중요한 이미지 전달 요소”라고 말했다. 다만 머리 볼륨을 키우면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정치인에게는 연륜 있는 노련한 이미지가 오히려 장점이라 그런 머리를 하는 이가 많다는 게 박 박사의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정치를 희망하는 여성이라면 ‘앞머리를 넘긴 볼륨감 있는 단발’을 할 경우 최소한 머리 때문에 실패할 확률은 낮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언제나 예외는 있다.

윤 전문가는 “멜라니아 트럼프(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부인)는 웨이브 있는 긴 머리를 선보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존 정치인 이미지 대신 스타 이미지를 마케팅하며 ‘트로피 와이프’ ‘미녀와 야수’ 느낌을 가져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박사는 “영부인 중 패션 감각이 최고라 ‘퍼스트레이디 퀸’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 카를라 브루니(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부인)는 프린지(fringe)와 롱 커트, 묶음 헤어 등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했다. 또한 앞머리를 넘겨 이마를 보여주는 건 ‘나는 숨기는 게 없다’는 표현이기도 한데,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예외적으로 단발이면서도 앞머리를 만들었다. 너무 전형적이지 않으면서도 실리를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주고, 이마가 조금 넓은 편이라 결점을 감추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22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