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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오월의 취재수첩… ‘그날’의 진실 세상에 알리다

입력 | 2021-12-14 03:00:00

‘5·18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10주년〈상〉
기자 6명의 기록 모은 취재수첩… 시민 16명의 일기 모은 ‘오월일기’
현장기록으로 당시의 상황 묘사… 청문회서 진실 밝히는 데 한몫



5·18민주화운동 당시인 1980년 5월 12일부터 5월 25일까지 2주일간 광주와 전남 목포에서 5·18 상황을 취재해 기록한 최건 전 동아일보 기자.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 동안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 항쟁으로 우리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로 도약시킨 역사적 전환점이다. 5월 그날의 현장에서 주부, 학생, 직장인, 기자 등이 진실을 기억하기 위해 시민일기, 취재수첩으로 남겼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담은 각종 5·18기록물 190만 점은 2011년 5월 25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올해에는 신군부의 핵심인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5·18에 대한 진실 규명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5·18기록물에 대한 중요성은 다시 커지고 있다. 5·18기록물은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주며 5월의 아픔을 치유하면서 진실을 규명하는 단초가 되고 있다. 유네스코 등재 10주년을 맞은 5·18기록물 중 시민일기와 취재수첩에 담긴 그날의 기록을 3회에 걸쳐 싣는다.

“고 문익환 목사는 5·18민주화운동의 씨앗입니다.”

최건 전 동아일보 기자(81)는 13일 5·18의 시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남 순천 출신인 최 전 기자는 고려대를 졸업한 뒤 1967년부터 동아일보 목포담당 기자로 활동했다.

최 전 기자는 1980년 5월 10일경 고 문익환 목사(1918∼1994)가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인 박관현 씨(1953∼1982)를 만나는 과정을 취재해 기록했다. 문 목사는 평생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매진한 사회운동가다. 전남대 총학생회장이던 박 씨는 5·18 직전까지 광주 시민들의 투쟁을 주도하다가 신군부가 5·17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자 도피했다. 박 씨는 1982년 경찰에 체포된 뒤 교도소에서 단식 투쟁을 하다가 숨졌다.

문 목사는 당시 박 씨를 광주에서 만나 신군부 등장 등 민주화운동 방향을 논의하려 했으나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다. 문 목사는 목포로 내려가 목포사범학교(목포대 전신) 학생들을 만나 시국 상황을 공유했고, 이후 서울로 상경하던 길에 광주에서 박 씨를 은밀하게 만나 긴박했던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최 전 기자는 “신군부의 등장으로 두 사람의 만남은 극비리에 이뤄졌고 5·18민주화운동의 한 씨앗이 됐다”며 “1980년 5월 12일 목포에서 ‘전두환은 물러나라’는 첫 시위가 시작된 것도 문 목사 방문이 작용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80년 5월 12일부터 2주일 동안 5·18 상황을 취재수첩에 기록했다. 5월 26일부터 광주가 심각하게 고립돼 전남 지역에서 광주로 진입할 수 없었다.

최 전 기자는 5·18 이후 신군부에 의해 해직됐다. 1987년 6·29민주화선언으로 동아일보에 복직해 1994년 퇴직했다. 최 전 기자는 “5·18 당시 진실을 취재수첩을 통해 전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2층 상설전시실에는 김영택 전 동아일보 기자(2014년 작고)의 취재수첩 3권이 전시돼 있다. 김 전 기자는 1988년 ‘10일간의 취재수첩’이라는 책자를 발간했는데 원고지에 쓴 초고도 함께 전시돼 있다.

김 전 기자는 1989년 국회 광주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5월 광주의 진실을 알렸다. 그는 5·18 당시 열흘 동안 계속된 시민 학살의 현장을 건물이나 으슥한 골목길에 숨어 꼼꼼히 수첩에 기록했다. 1996년에는 ‘실록 5·18광주민중항쟁’을 펴냈다. 그의 취재수첩은 신군부가 정권 장악을 위해 폭력 작전을 계획했다는 것을 입증하며 5월 진실을 밝히는 근거가 됐다. 정병흠 5·18민주화운동기록관 팀장은 “김영택 기자가 취재수첩을 바탕으로 쓴 책자와 실록은 5·18 진실 규명에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주부, 학생, 직장인, 공무원 등 16명의 일기를 모아 ‘오월일기’(319쪽)로, 기자 6명의 취재수첩을 모아 ‘오월취재수첩’(318쪽·사진)으로 발간했다. 오월취재수첩에 수록된 취재수첩은 동아일보 최 기자와 김 기자, 전남일보 나의갑, 중앙일보 장재열, 조선일보 조광흠, 한국일보 조성호 기자의 기록이다.

취재수첩은 보도통제를 당하고 있던 언론과 달리 기자들이 쓴 현장기록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홍인화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연구실장은 “오월취재수첩은 단순하게 자료를 엮지 않고 검증과 해제를 병행해 기록물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