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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 튼 ‘프리재즈 거장’… 77세 강태환, 성수동서 새 도전

입력 | 2021-12-10 03:00:00

‘초인적 연주’ 이어온 색소포니스트
29일 박재천-미연과 트리오 콘서트
“젊은 예술가와 소통에 보탬 되길”



서울 성동구 소극장 게토얼라이브에서 6일 만난 강태환트리오는 “피카소 그림은 멋있다고 하면서 실험적 음악은 이상하다고 폄하하는 것은 부당하다. 한번 들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미연(피아노), 강태환(색소폰), 박재천(타악).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요즘 들어서야 뭔가 보이기 시작해요. 연주할 때 가끔 ‘그것’이 보여요. 언뜻언뜻 보이니까 더 미치겠어요. 그래서 더 미친 듯이 하는 거예요.”(강태환)

케이팝과 ‘오징어 게임’이 다가 아니다. 강태환 씨(77)는 세계 3대 프리재즈 색소포니스트로 불린다. 무대 위에 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부는 자세부터가 기인이다. 코로 들이쉬어 입으로 내뿜는 순환호흡법을 통해 몇 분이고 한 음을 지속하는 명장면은 빙산의 일각. 음역대가 한정적인 알토 색소폰에서 바리톤, 베이스 색소폰의 초저음까지 동시에 뿜어내는 초인적 연주, 기존 음악체계를 초월한 음계와 박자는 선계(仙界)의 상상력인 듯하다.

백전노장의 강 씨가 요즘 젊은이들로 붐비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새 도전에 나선다. 6일 그를 만난 소극장 ‘게토얼라이브’는 ‘게토, 살아있다’는 간판처럼 날것이었다. 객석도 무대도 따로 없는 투박한 콘크리트 육면체가 공간의 전부. 이선재(색소폰)부터 박다울(거문고)까지 실험적인 청년 연주자들이 드나드는 곳에 이제 전설이 똬리 튼다. 강 씨가 박재천(타악), 미연(피아노)과 29일 여는 강태환트리오 콘서트 ‘시원음(始原音)-한국 프리재즈의 시작점’이 혁명의 신호탄이다.

“1970년대 종로구 공간사랑에서 고 김대환(드럼), 최선배(트럼펫)와 한국적 프리재즈를 실험했죠. 김덕수 사물놀이, 공옥진의 병신춤이 태어난 것도 그 무렵, 그 공간이었어요. 새로운 예술가가 시작하고 발견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성수동에도 자리 잡는 데 제가 작은 보탬이 되면 참 좋겠네요.”(강태환)

강 씨는 이날 병원 진료를 받고 오는 길이었다. 반백 년 묵묵히 혁신을 연주하던 그에게 몇 년 전 심부전이 온 것. 흉부에 스텐트를 두 개나 박고도 그는 매일 8∼10시간씩 색소폰 연습을 한다. 강 씨는 “호흡하는 데 조금 불편함이 있지만 연주에 몰입하면 모든 걸 잊기에 괜찮다”고 했다.

30년 가까이 그와 호흡을 맞춘 박재천, 미연 씨는 강 씨의 유별난 예술관과 황소고집을 잘 안다. 두 사람은 “해외공연을 함께 가면 남들이 술을 마실 시간에 혼자 숙소의 화장실이나 옷장에 틀어박혀 미친 사람처럼 색소폰을 분다. 그에게 음악은 가히 종교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강 씨는 고령에도 연주 활동을 멈춘 적이 없다. 건강이 안 좋아진 2018년 이후에도 서울 마포구 벨로주 망원, 중구 코쿤홀에서 트리오 공연을 종종 했다. 얼마 전, 정지선 게토얼라이브 대표가 공연을 제안했을 때 세 사람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우리 음악을 들려주고 그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며 프리재즈의 맥을 이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응했다. 내년에도 월간 또는 계간 공연을 통해 성수동과 인연을 정기적으로 이어갈 생각이다.

“가끔 (심부전 탓에) 맥박이 두세 번 안 뛸 때가 있어요. 그 자리에서 쓰러지죠. 그 순간에도 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이것은 매력적인 변칙 박자다. 이것이 재즈다. 찰나의 인생을 살고 있구나. 인생 참, 재밌다.’”

29일 오후 8시, 2만∼3만5000원.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