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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형제 곁에서 ‘착한 아이’로 살아야 하는… “비장애 형제들 마음의 상처 함께 치유”

입력 | 2021-10-26 03:00:00

서로 돕는 모임 만든 4인 인터뷰



비장애 형제 자조 모임 ‘나는’의 운영진. 이들은 비장애 형제들이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3남매 중 막내인 설지영 씨(33·여)에게는 아홉 살 터울의 오빠가 있었다. 오빠는 중 3 때 조현병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부모는 이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설 씨는 오빠의 양육자로 10년 넘게 살았다. 오빠가 유일하게 그의 말만 들었기 때문. 폭력성을 보이거나 생떼를 쓰는 오빠를 다른 가족들은 안쓰러워만 할 때 설 씨는 “안돼! 하지 마!”를 외치며 막아섰다.

몇 년 전 오빠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부모와 언니가 마지막 인사를 건넬 때 오빠를 받쳐 안고 마지막 호흡을 도운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오빠의 호흡이 끊긴 뒤에야 “사랑한다”는 말을 귓가에 속삭일 수 있었다.

이로써 그의 삶에서 장애와 관련된 것들은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설 씨는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똑똑하고 말 잘 듣는 착한 동생’이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계속 시달렸다. 자폐성 장애를 앓는 형제를 둔 친구 이은아 씨(32·여)가 “비장애 형제를 돕는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설 씨가 선뜻 응한 이유다. 두 사람은 비장애 형제인 박혜연(29·여) 송서원 씨(27·여)와 2016년 정신장애인의 비장애 형제를 돕는 모임 ‘나는’을 만들었다.

이들에게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돕는 모임이 필요했던 이유는 이렇게 설명된다. “우리 사회에서 비장애 형제는 가족을 돕는 ‘천사 같은 아이’나 장애 형제를 부정하는 반항아 정도로만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비장애 형제들은 정체성에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죠.”(박혜연). 이는 신체장애인 형제를 둔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나는’은 매주 비장애 형제 5, 6명으로 구성된 소모임 3, 4개 팀을 운영한다. 궁극적인 목적은 비장애 형제들이 장애 형제를 비롯한 가족들로부터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미국의 알코올 의존증 환자 모임 ‘AA(Alcoholics Anonymous)’의 진행 형식을 빌려 각자의 어려움을 솔직히 털어놓고 아픔을 쓰다듬는다. 대부분의 비장애 형제들은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도 ‘내가 이런 한가한 고민을 품어도 되나’ 하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나는’은 이런 고민은 당연하며 해결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는다. 최근 신간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한울림스페셜)를 통해 이런 메시지를 더 널리 알리고 있다.

비장애 형제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문제점 중 하나는 ‘나’와 ‘비장애 형제’라는 두 자아 사이의 괴리다. 전자만 발달하면 장애 형제로부터 도망치고 싶게 되고, 후자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자신의 진로를 사회복지사나 특수교사로 한정짓는 등 삶 전체를 장애 형제를 위해 바치게 된다. 송 씨는 “나는 비장애 형제라는 자아로 오랜 세월을 살았다. 두 자아의 균형을 맞추고 궁극적으로는 일치시켜야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은 장애 가정의 부모를 대상으로도 1년에 6, 7회씩 비정기 교육을 진행한다. 지친 부모들이 자신도 모르게 비장애 자녀에게 부담과 아픔을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초등학생인 비장애 자녀에게 “너는 내 가장 친한 친구”라며 기대기도 하고, 장애 자녀의 돌봄 역할을 맡기기 위해 동생을 낳는 경우도 있다. 이 씨는 “‘뭐든지 잘하는 고마운 자식’ 같은 말들도 비장애 형제에게는 짐”이라며 “비장애 자녀가 어려움을 호소할 때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