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충남 태안 안면도
태안 바람길(해변길 7코스)에 있는 운여해변(고남면 장곡리)에서 본 솔숲 방조제의 해넘이 광경. 해질녘 사진동호인의 낙조 촬영지로 유명한 명소다.
《조선시대에 건설된 운하로 육지가 섬이 된 충남 태안군 안면도는 변형된 지형만큼이나 굴절 많은 역사를 안고 있다.안면송이라고 불리는 훌륭한 적송(赤松) 덕분에 고려와 조선 때는 섬 전체가 ‘왕실의 숲’으로 보호받았지만, 외국 침탈 시기에는 수탈의 대상이 됐다. 섬이 통째로 일본인에게 팔리는 일도 겪었다. 천혜의 관광 자원을 갖춘 안면도 가을 여행은 땅에 얽힌 역사가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의 항공유 용도로 채취된 적송의 송진 상처.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인 1927년 4월, 안면도는 단돈 82만3000원에 일본인에게 통째로 팔렸다. 당시 ‘신한민보’는 ‘8000명 사는 안면도 일인(日人) 부호에게 팔렸다’는 제목으로 일제 조선총독부의 안면도 국유림 매각 소식을 전하면서 “왜(일본)의 마생태길(麻生太吉·아소 다키치)이 이 섬의 왕이 됐다”고 개탄했다. 마생태길은 한국에 대한 망언을 일삼아온 일본 아소 다로 전 재무상의 증조부이고, 그가 운영한 마생상점(아소상점)은 강제징용으로 물의를 빚은 대표적인 전범기업 중 하나다.
태안 안면도자연휴양림의 적송 군락. 안면송은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돼 있다.
현재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된 안면송을 품고 있는 안면도자연휴양림은 수령 100년 내외의 소나무 천연림이 집단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산자락에 배치한 숲속의 집(18동), 산림휴양관 등에서 묵어갈 수 있는데 예약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휴양림과 함께 그 건너편의 안면도수목원도 둘러볼 만하다. 이곳 전망대에 올라가면 소나무들에서 뿜어 나오는 솔향기와 함께 서해의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몸과 마음이 맑아짐을 느끼게 된다.
○도끼 하나만 있으면 잘사는 마을
조선시대에 사람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던 ‘왕실의 숲’ 안면도는 “도끼 하나만 있으면 잘살 수 있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풍요로웠다. 나무 하나만 잘 다루어도 먹고살 만한 곳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스며들 듯 하나둘씩 찾아왔다.
안면도가 역사적으로 사람이 살기에 좋은 땅이라는 뚜렷한 증거도 있다. 바로 고남면 패총(조개무지)이다. 패총은 옛 사람들이 바닷가나 강가에서 조개를 채집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가 쌓여 있는 것을 말한다. 패총에서는 옛 사람들이 쓰던 토기와 석기 등 유물들이 많이 나타나므로 중요한 유적으로 간주된다.
거기에 더해 한반도의 선주민들이 땅을 고르는 안목도 살펴볼 수 있다. 옛 사람들은 먹을거리가 풍부한 지역을 찾아낸 후, 그중에서도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판단한 터에 생활 근거지를 마련했다.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의 움집, 고인돌 무덤 등이 거의 대부분 풍수적으로 명당 터에 자리잡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을바다 여행의 백미, 안면도 바람길
태안 바람길(총 16km)의 시종점인 안면도 최남단 영목항. 안면도에서 원산도(보령시)를 잇는 원산안면대교가 보인다.
이곳에는 운여해변, 바람아래해변 등이 독특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낸다. ‘운여(雲礖)’는 앞바다가 넓게 트여 파도가 높고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의 포말이 마치 구름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변길을 따라 해송이 내뿜는 솔향기를 맡으며 지극히 고운 규사로 구성된 백사장, 물고기를 잡는 독살, 해안사구 등 자연 그대로의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운여해변은 멋진 일몰을 감상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일몰 때가 되면 한적하던 해변이 다소 번잡스러워진다. 낙조를 촬영하기 위해 때맞춰 사진 동호인들이 한꺼번에 모여들기 때문이다.
바람아래해변은 마치 사막과 같은 모래언덕 아래로 바람도 비켜간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이곳은 다양한 생물종들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어 해루질로 유명하다.
○가을꽃 명소로 꼽히는 태안
태안 꽃지해수욕장의 코리아플라워파크에 만개한 가을꽃 축제.
태안 청산수목원 내 흰 솜털 같은 꽃을 피운 팜파스그라스.
미국에서 들여온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몽환적인 색깔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태안은 지금 대하와 꽃게가 제철이다. 대하구이와 꽃게탕 등으로 가을의 또 다른 포만감을 맛볼 수 있다.
글·사진 태안=안영배 기자·풍수학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