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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기자의 도쿄 엿보기]앱 승인 안돼 입국 3시간…번역기 돌려 “기다려라”

입력 | 2021-07-21 03:00:00

[도쿄올림픽 D-2] 외국 선수단 입국 늘며 북새통
현장서 처리해줄 시스템 안갖춰… 미리 서류 냈어도 복불복 먹통
앱 승인 기다리던 외국인 선수 배고파 햄버거 먹는 영상 시청
진행요원 영어 못해 혼란 커져



나리타 공항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각국 선수들 베네수엘라 펜싱 대표선수인 퀸테로 호세(오른쪽)가 19일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 한편에 마련된 간이 의자에 기대 앉아 ‘오차(OCHA)’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도쿄 올림픽 개막이 불과 2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일본 입국 첫 관문에 필요한 오차 승인에서부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쿄=김정훈 기자 hun@donga.com

김정훈 기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19일 오후 2시경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 마스크와 파란색 방호복 등으로 중무장한 도쿄 올림픽 관계자의 번역기로 들려준 이 말을 들은 퀸테로 호세(25)는 한숨을 크게 쉬더니 피곤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2019년 미국 등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이 참가하는 ‘팬 아메리카 대회’에서 펜싱 사브레 6위를 했던 베네수엘라 대표선수인 호세는 이날 일본 땅을 밟았지만 입국에 필요한 첫 관문인 ‘오차(OCHA·Online Check-in and Health report App·온라인 체크인 건강관리 앱)’ 승인이 나지 않아 숙소로 향할 수 없었다. 호세는 간이의자에 기대 멍하니 휴대전화만 바라봤다.

올림픽 개막을 불과 이틀 앞둔 상황에서도 도쿄 입국의 첫 관문인 ‘오차’ 승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출전 선수와 관계자들이 애를 먹고 있다. ‘오차’는 자신의 건강 상태와 입국에 필요한 자료 등을 입력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입국 전에 일본 당국에 활동계획서를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만 입력이 가능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도쿄로 들어오는 외국인을 통제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한 달 전에 활동계획서를 제출해도 이에 대한 승인은 사실상 ‘무작위’로 이뤄지고 있다.

선수들도 허술한 시스템의 희생양이 됐다. 이날 호세는 오후 1시경부터 ‘오차’ 승인을 위해 대기하다 3시간 뒤에서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호세는 기자에게 “얼른 숙소로 가 짐을 풀고 식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호세는 입국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휴대전화를 켜서 햄버거를 먹는 영상을 찾아보는 것일 정도였다.

물론 일본도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에서 몰려드는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사전에 활동계획서를 승인하지 못했다면 현장에서 빠른 처리를 위한 대책 마련이라도 나서야 했다. 하지만 공항에 나와 있는 ‘오차’ 승인 관계자는 영어로 의사소통도 하지 못했다. 작은 휴대용 번역기 하나를 들고 다니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를 반복할 뿐이었다. 번역기는 “확인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을 “더 기다려 주시니 확인 중이다”라며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한 올림픽 관계자는 “우리도 ‘오차’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오차’ 승인이 나지 않은 사람들을 알려주고 이에 대한 답변을 기다려야만 하는 구조”라며 “하지만 담당자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전화를 받아도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해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항변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안고 들어온 선수와 그들의 꿈 하나만을 지원하기 위해 동행한 관계자들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단순히 기다리라는 말 대신 빈틈없는 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도쿄는 지금 어순이 뒤집힌 번역기처럼 개막전부터 뒤죽박죽 엉켜 버린 것은 아닌지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