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체르노빌: 세계 최대 핵 재앙의 전말/애덤 히긴보덤 지음·김승진 옮김/740쪽·3만2000원·이후
다음 달 26일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 35주년이다. 이 사고는 2019년 미국 HBO의 드라마 ‘체르노빌’로도 다뤄졌다. HBO 제공
올해는 체르노빌 사고 35주년이다. 사고 후 체르노빌은 ‘방사능 공포’ ‘전 세계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 지역’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정작 사고 자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10년 이상 취재에 매달렸다. 당시 사람들의 일기와 편지부터 과학자들의 조사 보고서, 사고 직후 방사능 정찰 부대가 사용했던 지도까지 여러 자료를 뒤져 생생하게 묘사했다.
소련의 당시 정치·사회적 배경 설명도 사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70년대 소련 당국은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고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대대적인 원전 건설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1980년대에 가속화됐는데, 인력과 자재가 부족하다 보니 크고 작은 건설상 결함이 많았다. 하지만 기술을 무한 신뢰하고 대중에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채 과학계는 무모한 실험들을 강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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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후 발전소 4호기를 찍은 최초의 사진이다. 체르노빌 발전소 소속 사진사 아나톨리 라스카조프가 1986년 4월 26일 오후 3시경 헬기에서 찍었다. 이후 제공
추가 폭발을 막기 위해 동원된 사람들도 많았다. 하룻밤 사이 급히 소집된 예비군인 ‘제731 특별부대’는 안전복은 물론이고 헝겊 방독면조차 없이 투입돼 폭심에 모래, 납 등을 떨어뜨렸다. 로봇도 시도했는데, 세 대 모두 버티지 못하고 고장이 났다. 결국 납 앞치마를 두른 젊은이들이 방사능을 내뿜는 파편들을 삽으로 퍼서 옥상까지 갖고 간 뒤 4호기 폐허 위로 던졌다. 3분, 2분, 40초…. 시간이 다 되면 사이렌이 울렸다. 하고 나면 눈이 아프고 입이 마비돼 치아의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발로 뛰어 모은 방대한 사실을 현장감 넘치는 글로 정리해 흡인력 있는 긴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더 마음 아프다. 끔찍한 사고 후 삶을 이어 나가는 피해자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