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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와 halmoni[횡설수설/김선미]

입력 | 2021-02-05 03:00:00


녹음이 우거진 시냇가. 어린 손자 데이빗이 할머니와 걷는다. 할머니가 한국에서 가져와 뿌린 미나리 씨가 알아서 잘 자라 밭을 이루었다. “데이빗아, 미나리는 잡초처럼 막 자라니까 누구든지 뽑아 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미나리를 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김치에도 넣어 먹고 찌개에도 넣어 먹고 아플 땐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 아이고, 바람 분다. 미나리가 고맙습니다, 땡큐 베리 머치 절하네.”

▷제78회 미국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미국 아칸소주로 이주해 농장을 일구는 한국인 이민자 가족 이야기다. 배우 윤여정(74)이 연기한 할머니는 깡촌에 정착한 딸과 사위를 도우러 한국에서 왔다. 상아색 원피스를 입고 와서는 고춧가루와 멸치를 풀어낸다. 감격한 딸이 울자 말한다. “야, 또 울어? 멸치 때문에 울어?” 한사코 안 받겠다는 딸에게 돈 봉투도 쥐여 준다.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 감독(43)은 자전적 내용을 영화로 만들었다. 손자는 한국에 가 본 적도 없으면서 처음 만난 할머니에게서 한국 냄새가 난다고 한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노랫말이 TV에서 흘러나오자 할머니가 손자에게 말한다. “네 엄마 아빠 한국에서 누가 노래만 시키면 서로 두 눈에서 꿀물을 뚝뚝 흘리면서 저 노래만 불렀다.” 그랬나, 하는 딸에게 말한다. “여기 오더니 다 까먹었구나.” 지난해 영화 ‘기생충’으로 이 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미나리는 결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뉘앙스로 가득한 영화”라고 한다.

▷할머니는 쿠키는 못 만들어도 화투는 가르친다. 손자가 물가의 뱀을 쫓으려 하자 삶의 지혜도 알려준다. “보이는 게 나아. 숨어 있는 게 더 위험한 거란다.” 딱 윤여정이다. 인생의 굴곡을 이겨내고 두려움 없이 도전해 온, 주인공만 고집하지 않으니 자유로운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 최근 리얼리티 프로그램 ‘윤스테이’에서 보여주는 그의 글로벌 감각과 공감능력은 젊은층으로부터 존경받는다. ‘윤여정표 쿨함’의 비결은 부단한 자기 단련이다.

▷골든글로브 측은 영어대사 비중이 적다며 미나리를 작품상이 아닌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올리고 윤여정은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명하지 않았다. 미나리는 이민 세대인 부모가 집에서 모국어로 대화하는 미국의 속살을 다룬 ‘미국인 감독과 미국 자본에 의해 미국에서 촬영한’ 영화다. 영화를 본 미국인들은 ‘halmoni’(할머니)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고 한다. 미나리는 뿌리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큰 울림을 준다. “미나리, 할머니, 땡큐 베리 머치!”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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