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답변은 한 달 전에 청문회를 가진 조성대 선관위원이 서면 답변으로 제출한 것과 같았다. 내용은 물론 ‘가운뎃점(·)’ 같은 문장부호와 띄어쓰기까지 같은 완전한 동일 문장이다. 컴퓨터 한글 파일에서 ‘복사해 붙여넣기(복붙)’를 하지 않았다면 존재하기가 어렵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노 후보자의 서면 질의 답변 320건 중 63건이 조 위원의 답변과 토씨까지 일치했다.
▷청문회 답변서의 ‘복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합참의장에 임명된 박한기 후보자는 청문회 답변 89건 중 54건을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이 후보자일 때 냈던 답변을 그대로 복사했다. 얼마 전 임명된 서욱 국방부 장관과 원인철 합참의장도 청문회 서면 답변에서 ‘북핵과 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 등에 대한 수십 건의 서면 질의에 같은 답변을 적어 ‘복붙’ 지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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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5부 요인이며 선거를 총괄하는 중앙선관위원장 후보자가 다른 사람의 청문회 답변을 그대로 복사해서 국민의 대표기관에 보냈다면 참으로 무책임한 행태다. 헌법기관장 후보이자 현직 대법관으로서 정치적 입장이나 정책 방향을 묻는 질의에 본인의 철학과 소신을 진솔하게 답해야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다. 노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대법관 시절 군 형법 조항을 간과해 하급심인 군사고등법원에 의해 판결이 뒤집히는 등 다른 흠결 사항도 지적받았다. 대통령 임명을 거쳐 노 후보자가 중앙선관위원장이 되면 내년 재·보선과 차기 대선 및 지방선거, 22대 총선까지 공정선거를 관리하는 책임을 맡게 된다. 이번 ‘복붙’ 행태가 여야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선거가 치러질 수 있도록 중립성 독립성을 지켜야 하는 중앙선관위원장 자리의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가볍게 여긴 탓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