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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합 받고 욕먹으며 한계에 도전? 몸도 마음도 골병들어요

입력 | 2020-10-14 03:00:00

의사-심리학자 등 전문가가 분석한 ‘가짜사나이2’ 고강도 훈련 후유증




이달 초부터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가짜사나이2’의 훈련 장면. 고된 구보에 지쳐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참가자를 본 교관이 “퇴교하라”며 거세게 밀치다가 목을 잡고 다그치고 있다(위쪽 사진). 낙오된 참가자를 발로 밟은 채 “커피 마시고 퇴교하라”고 하는 장면도 여과 없이 방영됐다. 유튜브 캡처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침마다 험한 소리 내지르며 괴롭히다가 점심때는 평온한 표정으로 ‘밥 먹으러 가자’고 하던 옛 직장 상사가 떠올랐다. 괴로워서 못 보겠더라.”

11일 유튜브에서 ‘가짜사나이2’ 4회를 본 회사원 김재석 씨(40)는 “잊었던 기억이 아프게 되살아나서 밤잠을 설쳤다. 쉬는 날 무심결에 보다가 뜻밖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가짜사나이1’은 평범한 남자들이 힘든 훈련을 받으며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줘 호응을 얻었다. 이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가짜사나이2’는 첫회의 조회수가 1370만 건을 넘었지만 출연자에 대한 학대 논란을 일으켰다. 제작진은 “시즌1과 달리 실제 특수부대처럼 높은 강도의 훈련을 받는다는 사실을 미리 알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심리학자, 의사, 스포츠트레이너는 “육체적 심리적 학대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입소 첫날 밤부터 바닷가에 불려나간 훈련생들은 쏟아지는 교관들의 욕설을 들으며 얼굴을 흙탕물에 처박고, 깍지를 낀 채 자갈밭에 엎드려뻗치고, 파도 쪽으로 머리를 놓고 바닷물 속에 누워 추위와 싸웠다. 넋 나간 표정으로 새벽을 맞은 훈련생들의 귀에는 “이제 시작인데. 어이구 나 같으면 지금 퇴교한다”는 교관의 조롱이 꽂혔다. 몸과 함께 심리를 괴롭혀 정예를 걸러내는 훈련법을 따랐다지만, 일반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비판이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시즌1에는 힘든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긍정적 자극과 공감을 주는 요소가 있었다. 하지만 시즌2는 ‘상호 합의가 됐다면 교관이 훈련생에게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잔인한 폭력을 가해도 용인된다’는 듯한 상황을 보여준다”고 했다.

“평소에 ‘일을 못하면 호되게 몰아세워야 옥석이 가려지고 능률이 오른다’고 믿던 시청자라면 이 영상에 의해 그 가치관이 강화될 수 있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 본다면 과연 ‘절대 따라 하지 말라’는 안내문을 따를까? 시즌2에는 국가대표 운동선수 등 널리 알려진 훈련생들이 출연한다. 상황에 대한 모방 심리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시즌1에 대한 호평은 끝부분에서 많이 나왔다. 겨우겨우 훈련을 마친 참가자들이 뜻밖의 경험을 돌아보며 교관들과 악수하는 장면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남성 시청자는 “이번에도 그렇게 끝난다면 공감하기 어려울 듯하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모멸의 여파는 다르다. 괴롭힌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당한 사람 마음에 남은 상처는 오래간다”고 말했다.

오리걸음, 곰걸음, 머리박고 엎드리기,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버티기 등 얼차려가 반복되는 장면을 본 전문가들은 “그냥 ‘하루 이틀 당한다고 크게 다치지 않는다’고 넘기기에는 염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훈련 현장에 동행하는 의료진이 퇴소 결정에 관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박윤길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저체온증은 극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자칫 ‘아차’ 하는 사이 생명을 잃을 위험이 적잖다. 오리걸음은 젊은 사람이 해도 부상을 입기 쉬운 동작이다. 관절 주변의 근세포가 손상돼 미오글로빈 등 세포 속 물질이 혈액에 유입되는 횡문근융해증이 나타날 수 있다. 치료하지 않으면 신부전증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근육통과 무력감이 2주 이상 지속됐다면 병원 진료를 받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류현진 선수의 전담 트레이너였던 김용일 대한선수트레이너협회장은 “요즘은 선수 훈련과 마찬가지로 군대에서도 오리걸음처럼 부상 위험이 큰 기합은 주지 않는다고 들었다”며 “머리박고 엎드리는 것도 레슬링 선수들이 실전 위기 상황에서 버티려고 목 주변 힘을 키우기 위해 조심해서 제한적으로 하는 동작이다. ‘따라 하지 말라’는 문구를 잠깐 보여주는 것으로는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