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선권 북한 외무상. 2018.12.26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연일 대외 정세와 관련해 강도 높은 비난을 섞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말폭탄에 가까운 비난전을 가하면서도 미국과 남측에 대해 확연한 톤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북한은 대북 전단(삐라) 문제와 관련해 지난 4일부터 12일까지 총 네 번의 입장을 발표했다. 김여정 당 제1부부장(4일), 통일전선부 대변인(5일), 조선중앙통신 보도(9일), 장금철 통일전선부장(12일) 명의로 3번의 담화와 1번의 관련 입장이 나왔다.
4번의 발표 모두 내용은 험악했다. 김 제1부부장은 돌연 제기한 대북 전단 문제와 관련해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철거,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 군사합의 파기 등을 언급하며 위협했다. 그러면서 “나는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싫더라”라며 우리 측을 하대하는 발언을 내놨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는 대남 사업의 ‘대적 사업’으로의 전환이 발표됐다. 우리 측을 적대시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다. 보도에서 북한은 “남조선 것들”이라고 우리 측을 지칭하며 “이들과의 일체 접촉 공간을 완전 격폐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 첫 단계의 행동”으로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선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마치 혼란을 의도한 듯 전날 밤늦게 기습적으로 발표된 장금철의 담화에서는 청와대와 정부가 죄를 저질렀다며 “저지른 무거운 죗값에 비해 반성하는 태도가 너무나 가볍다”라던가 “서푼짜리 연극을 한다”, “남쪽 동에 사람들이 말이야 잘한다”라는 언사를 구사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과 이로 인한 북미관계 결렬 이후 전면에서 사라졌던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 기구들이 비난에 열릴 올리는 것에 외무성도 가세했다.
외무성은 지난 11일 권정근 미국 담당 국장과 기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미국을 향한 비난을 가했다.
권 국장은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입을 다물고 제 집안 정돈부터 잘하라”라고 경고성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12일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2주년 당일에는 리선권 외무상이 직접 나서 미국을 비난했다. 그는 담화를 통해 “우리 공화국의 변함없는 전략적 목표는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확실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며 “우리는 다시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미국 집권자에게 치적 선전감이라는 보따리를 던져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최고지도부와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 관계가 유지된다고 해서 실제 조미관계가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는 싱가포르에서 악수한 손을 계속 잡고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라며 북미 정상의 첫 합의를 파기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도 보였다.
이어 13일에는 권정근 국장이 다시 등판했다. 그는 담화를 통해 우리 정부가 리 외무상의 담화에 대해 “정부는 북미대화의 조속한 재개와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비난했다.
또 “우리는 2년 전과도 많이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으며 계속 계속 무섭게 변할 것”이라며 “비핵화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는 것이 좋다”라고 맹비난했다.
이 같은 북한의 관련 입장 발표는 최소 10월까지 이어질 자력갱생 기조의 정면 돌파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독자 행보’를 걷겠다는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다만 극도로 날이 선 비난전을 가하면서 미국과 남측을 모두 적대시까지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미국과 우리를 향한 톤의 차이는 확연히 다르다. 남측에 대해서는 사실상 ‘적’으로 규정하고 온갖 욕설을 섞은 비난을 가하고 있다. 관영매체보다 날을 더 세우는 대외 선전매체를 통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조롱에 가까운 비난도 가하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사뭇 톤이 다르다. 권정근 국장은 11일 입장 발표에서 “우리와 미국 사이에 따로 계산할 것도 적지 않다”라며 아직 관계를 끊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리 외무상의 담화에서 “우리 공화국의 변함없는 전략적 목표는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확실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언급된 것도 대미 협상 전략이 바뀌었다는 메시지를 내는 셈이다.
북한은 또 권 국장의 이 같은 입장과 리 외무상의 담화는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매체에 게재하지 않았다. 아직 내부적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결산’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반면 남측을 향한 비난은 연일 주민들에게도 널리 알리고 있다. 또 각 단위 및 지역별로 남측에 대한 규탄 집회를 대규모로 진행하기도 했다. 정부가 대북 전단 문제에 대한 출구를 찾고 있음에도 북한 내부적으로는 남측과의 관계를 사실상 결산했다는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이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