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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벽 방역-5G 기술 선보인 중국의 ‘언택트 코로나 양회’

입력 | 2020-05-28 03:00:00

[글로벌 현장을 가다]
코로나 여파로 두 달 이상 연기… 2, 3차례 검사-격리해야 참석
고화질로 비대면 기자회견-인터뷰
시진핑-리커창 “대응 부족했다”




2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전역에서 모인 정협 위원들이 마스크를 쓴 채 보안 검사를 받고 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이렇게 참석할 수 있는 건 행운이에요.”

21일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 호텔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인민대회당으로 향하는 전용 버스 안에서 중국 정부 관계자가 취재진에게 말했다. 버스 안에는 본보를 포함해 각국 외신 기자 20여 명이 타고 있었다. 정부 관계자 옆에 앉아 있던 홍콩 기자가 “정말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날 오후 3시(현지 시간) 인민대회당에서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정치자문기구) 개막식이 곧 열릴 참이었다.

중국은 매년 정협과 한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를 연다. 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 행사인 이 두 대회를 양회(兩會)라고 부른다. 정협이 전국인대보다 하루 먼저 개막했으니 이날은 양회의 시작이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두 달 넘게 연기됐다. 원래 정협은 3월 3일, 전국인대는 이틀 뒤인 3월 5일에 시작해 15일 폐막할 계획이었다. 내외신 기자들의 취재 신청은 예년처럼 2월에 진행됐다. 하지만 3월 초까지 중국 내 코로나19의 불길이 잡히지 않자 일정을 미뤘다. 코로나19가 처음 확산된 후베이(湖北)성을 포함해 중국 전역에서 전국인대 대표 3000여 명, 정협 위원 2000여 명이 수도 베이징으로 몰려들기엔 중국 정부가 치러야 할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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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막히는 ‘폐쇄식 관리’

코로나19의 확산세가 크게 꺾인 뒤에야 열린 양회 분위기는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양회를 취재하려면 행사 시작 2∼4시간 전인 새벽부터 인민대회당 동문에서 수백 명의 기자가 다닥다닥 길게 줄을 서야 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올해 방역을 이유로 출입 가능한 취재진을 극소수로 제한했다. 그 대신 취재를 요청한 기자들에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배포해 행사 관련 보고와 법안 등 문서를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중국 정부 관계자가 현장 취재를 앞둔 기자들에게 ‘행운’이라고 강조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 관계자들은 외신 기자들에게 방역 수칙을 귀가 닳도록 되풀이했다. “인민대회당에서 행사 내내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됩니다. 1m 이상 거리를 유지하세요” “안내자를 따라 이동하고 이탈하지 마세요. 마음대로 위원들을 취재하면 안 됩니다” “개막식이 끝난 뒤 이 전용 버스를 타고 호텔로 다시 이동합니다. 인민대회당에서 개별적으로 떠날 수 없습니다”….

중국 정부 관계자들은 이를 ‘비환(閉環) 관리’, 즉 폐쇄식 순환 관리라고 불렀다. 비환 관리는 개막식 9시간 전인 이날 오전 6시 댜오위타이 호텔에서 핵산 검사를 받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기자들은 양회가 열리는 인민대회당과 미디어센터에만 머물러야 했다. 이동은 전용 버스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핵산 검사를 받지 않은 외부 사람을 접촉하거나 이 장소에서 벗어나면 취재 자격을 잃게 된다. 한 외신 기자는 “양회 기간 인민대회당, 미디어센터, 호텔만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곳”이라고 농담했다.

중국 전역에서 출발한 전국인대 대표, 정협 위원들도 베이징에 도착할 때까지 엄격한 비환 관리 통제를 받았다. 홍콩 대표단은 19일 전용 버스를 타고 홍콩과 맞닿은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에 도착해 핵산 검사를 받은 뒤 20일 비행기로 베이징에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해서도 다시 핵산 검사를 받았다. 마카오 대표단은 베이징행 비행기를 타기 전 한 번, 베이징 공항에서 다시 한 번, 호텔에 격리하면서 또 한 번 등 총 세 번에 걸쳐 핵산 검사를 받았다. 면봉으로 콧속이나 입속에서 표본을 채취하는 핵산 검사를 받다 보면 불편하기도 했다. 양회에 참가한 지역 대표단들은 이런 핵산 검사를 2, 3차례씩 받은 셈이다.
○ 기자회견·회의 모두 원격으로

신화통신이 올해 양회에서 처음 선보인 원격 인터뷰.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을 이용해 1000km 떨어진 인터뷰 대상자와 같은 장소에 있는 것처럼 대화를 나눴다. 사진 출처 신화통신 위챗 공식 계정

방역 통제가 다소 숨 막혔다면 5세대(5G) 이동통신을 통한 ‘비대면’ 진행은 포스트 코로나의 단면을 보여줬다. 24일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기자회견, 그리고 주요 인사들의 인터뷰는 모두 화상을 통해 진행됐다. 28일 전국인대 폐막식 이후 열리는 리커창(李克强) 총리 기자회견도 화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취재진은 핵산 검사를 거쳐 미디어센터에 도착했다. 기자들은 이곳에서 차로 약 20분 떨어진 인민대회당에 있는 기자회견 주인공에게 질문을 했다. 양회가 중국 체제 선전장인 만큼 사전에 허가받은 기자만 질문 기회를 갖는 한계가 있었지만, 기자회견에 사용된 기술만큼은 놀라웠다.

4K 또는 8K 고화질 대형 화면의 화질이 워낙 뛰어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회견 주인공이 바로 앞에서 발언하는 것 같았다. 5G 기술 덕분에 음성이 지연되는 일도 없었다. 중국 당국은 화면 앞에 폐쇄회로(CC)TV 5개를 설치한 뒤 인민대회당 화면을 통해 질문 기자를 지정했다. 기자들이 앉은 구역은 북구와 남구로 나눴는데, 질문하기로 한 기자를 진행자가 쉽게 찾도록 하기 위한 표식이었다.

먀오웨이 공업정보화부장은 25일 “화상 기자회견 방식은 코로나19 방역에 5G를 활용한 대표적 사례 3가지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그 역시 화상 연결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다른 하나는 코로나19 대응을 주도한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고위급 전문가팀 팀장인 중난산(鐘南山) 중국 공정원 원사가 5G 영상으로 코로나19 위중 환자 5명을 원격 진료한 일이었다. 마지막 하나는 관영 신화통신의 새로운 시도였다.

○ 함께 있는 것처럼… ‘클라우드 양회’

신화통신은 다른 장소에 있는 기자와 인터뷰 상대가 마치 한 장소에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상을 5G 기술로 구현했다. 베이징의 신화통신 기자는 양회 개막 전 후베이성 충양(崇陽)현 한 농촌 마을의 공산당 지부 청쥐(程桔·30) 서기를 인터뷰했다.

양회에서 공개된 인터뷰 영상에서 두 사람은 서로 악수를 하고 대화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멀리 떨어진 다른 장소에 있었다. 신화통신 기자는 베이징에서 질문했고, 청 서기는 베이징에서 약 1000km의 떨어진 충양현 마을 스튜디오에서 답했다.

인터뷰 영상은 베이징 스튜디오를 촬영한 것이다. 청 서기는 이 영상에서 홀로그램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두 사람이 각 스튜디오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악수하는 동작을 취하자, 인터뷰 영상에서 실제 악수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손이 겹쳐졌다. 마스크를 쓴 청 서기는 악수한 뒤 “매우 특이해요. 신기해요”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신화통신은 이런 방식으로 중국 전역의 양회 참가자들을 인터뷰했다.

중국은 이번 양회를 ‘클라우드 양회’라고 불렀다. 양회에 참가한 대표, 위원들도 첨단과학 기술을 활용한 코로나19 양회와 방역 관련 각종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전국인대 대표인 류칭펑(劉慶蜂) 커다쉰페이(科大訊飛·아이플라이텍) 회장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입법 시스템으로 전국인대의 입법 업무효율성을 높이자고 제안했다. 음성인식 AI 기술로 유명한 그는 화상회의 내용을 바로 문자로 전환해 기록하자는 의견도 냈다.

전국인대 대표인 청징(程京) 중국 공정원 원사는 전염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AI, 5G, 빅데이터 기술을 결합한 통제 시스템 구축을 제안했다. 전염병에 대비해 중국 전역의 자동 모니터링 보고 시스템을 구축한 다음 이를 중앙 정부가 직접 통제하자는 발상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감시 기술로 코로나19 기간 심각해진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을 해결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장시(江西)성 인민대표인 리슈샹(李秀香)은 블록체인에 게임 로그인 날짜와 시간을 기록하고 이를 정부와 학부모가 볼 수 있도록 하자는 다소 전체주의적 발상까지 내놓았다.

5G의 첨단기술이 ‘코로나 양회’ 개최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첨단기술만으로 중국이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드러냈던 은폐와 방역 구멍의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4일 후베이성 전국인대 대표단 법안 심의에 참석해 “코로나 대응에서 단점과 부족함을 드러냈다. 보완하고 구멍을 메워야 한다”고 말했다. 리커창 총리도 22일 전국인대 개막식 정부업무보고에서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정부 업무가 부족했고 형식주의와 관료주의가 두드러졌다”며 “대중의 의견과 제안을 중시해야 한다. 인민의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