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치유 기술 어디까지 왔을까
실리콘 절연체에 전기트리가 만들어진 모습(왼쪽 사진). 마이크로캡슐에서 나온 용액이 균열을 메우며 전기트리가 사라지고 있다. KIST 제공
중간접속함 고장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중간접속함 고장은 총 15차례였는데 2011년에서 2014년 사이 고장 횟수는 총 28회다. 절반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고장 횟수는 약 두 배 늘어난 셈이다.
접속함의 보수가 어렵다 보니 한국전력은 접속함 소재에 ‘자가치유기술’을 도입해 사고 위험 자체를 없애는 아이디어를 냈다. 정용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북분원 구조용 복합소재연구센터장 연구팀은 최근 대한전선과 KCC, 숭실대, 경기대와 공동으로 수 분 내로 균열을 스스로 치유하는 154kV급 중간접속함 소재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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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실리콘 내부에 자가치유 물질을 넣은 마이크로캡슐을 섞었다. 캡슐 속에는 실리콘을 메울 에폭시 수지 물질과 이를 굳힐 가교제가 들어 있다. 전기트리가 자라나다 캡슐에 닿게 되면 캡슐이 터지고 캡슐 속 물질이 균열을 메운 뒤 수 분 내로 굳어지며 전기트리를 없앤다. 정 센터장은 “전기트리가 실리콘 속 이물질을 향해 자라나는 특성이 있어 캡슐에 유도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연구팀이 개발한 자가치유 콘크리트의 모습이다. 물을 만나면 증식하며 탄산칼슘을 내뿜는 세균을 캡슐에 넣어 균열을 메운다. 바실리스크 제공
자가치유 기술 중 일부는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연구팀은 2011년 수분을 만나면 번식하는 세균 캡슐을 콘크리트 속에 섞어 넣은 자가치유 기술을 개발하고 ‘바실리스크’란 회사를 세웠다. 바실리스크는 유럽 신화 속 상상의 동물로 쳐다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돌로 만든다. 세균 콘크리트도 콘크리트에 금이 가면 수분에 노출된 세균이 탄산칼슘을 내뿜어 금이 들어간 부분을 메운다. 올해 2월 일본의 한 콘크리트 제조사와 계약을 맺고 일본에서도 제조에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2016년부터 유통을 시작했다.
자가치유 기술은 수리가 어렵거나 빠른 수리가 필요한 곳에 효과가 크다. 바실리스크의 세균 콘크리트는 1686년 지어진 네덜란드 헷로 궁전을 개축하는 공사에 지난해 11월부터 쓰이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2030년까지 우주선과 우주복에 자가치유 기술을 도입하는 목표를 세웠다. NASA 랭글리연구소는 지난해 우주선 외벽 사이에 산소에 반응하는 자가치유 물질을 넣는 기술을 개발했다. 우주 사고로 우주선에 구멍이 나면 우주선 속 산소가 빠져나가는 걸 감지하고 즉시 구멍을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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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조사회사 ‘마켓앤드마켓’은 자가치유 소재 시장이 2015년 4980만 달러(약 611억 원)에서 2021년 24억4770만 달러(약 3조 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소재 자체 자가치유 능력은 부드러운 물질에서만 개발되고 있어 현재는 자동차 클리어 코팅처럼 코팅제 등으로만 활용되는 상황이다. 정 센터장은 “부러졌을 때 회복이 어려운 단단한 물질에도 적용하는 게 향후 과제”라고 말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