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의 박멸을 보고했다. 하지만 다른 역병들은 좀비처럼 죽는 법이 없다. 특정 지역에서 발발(outbreak)해 유행(epidemic)하다 여러 대륙으로 확산돼 대유행(pandemic)하거나, 끝난 듯하다가도 어느 지역에 토착화해 출몰(endemic)하다가 다시 대유행하기도 한다. 장티푸스 말라리아 지카 등이 대표적인 풍토병, 즉 엔데믹이다. 엔데믹은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고질병을 뜻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발발한 코로나19도 팬데믹을 지나 결국 엔데믹의 길을 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왔다. 마이클 라이언 WHO 사무차장은 13일 “코로나19는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엔데믹 바이러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100종이 넘는 백신이 개발 중이지만 “백신이 나와도 박멸할 순 없다”며 홍역을 예로 들었다. 백신 개발로 발병률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2018년 한 해에 홍역 사망자가 14만 명이다. 백신이 개발돼도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기까지는 5년이 걸릴 수 있다는 비관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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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방역의 핵심은 ‘청결한 환경’과 ‘환자를 상대할 때 등지도록 할 것’, 다시 말해 ‘거리 두기’였다. 지금도 가장 유효한 방역 대책이다. 엔데믹이 무서운 건 변종을 통해 우리 일상에 남아 있다 방심의 기회를 노리기 때문이다. 홍역처럼 국내에서 사라져도 해외에서 들어오는 사람들로 다시 유행할 수 있다. 항생제와 백신으로도 역병은 정복되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전쟁의 대상이 아니라 적응해야 할 환경인지 모른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