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지지층 벽 못 넘은 野 총선 참패 의제·담론, 국민 눈높이에 새로 맞춰야
정연욱 논설위원
이런 흐름은 범보수 세력 재편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그동안 친박-비박에 이어 박근혜 탄핵 찬반으로 번진 집안싸움은 과거 이력을 들쑤시며 낙인찍기에 골몰했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범보수 진영을 겨냥한 적폐 청산 드라이브에도 탄핵 찬반의 골은 더 깊어졌다. 마치 조선시대 인조반정 집권 세력이 내부 실력 양성은 제쳐둔 채 두 차례 호란(胡亂)을 겪으면서 ‘척화론’과 ‘주화론’ 갈등으로 지새운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긴 호흡의 비전 없이 강경 지지층만 쳐다보는 집안싸움에서 이기면 만사형통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니 내부 갈등은 더 격렬해졌고, 외연 확장은 생색내기에 그쳤다.
정당은 지지층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끌려가서도 안 된다. 중도·무당층을 아군은 못 될지언정 최소한 우군으로 끌어오는 플러스 전략은 선거 캠페인의 기본이다. 미래통합당은 이번 선거에서 지지층을 아우르는 기반 위에서 외연을 넓히는 투 트랙 대응에 실패했다.
광고 로드중
총선 참패 후 야당에선 ‘30대 데이비드 캐머런’과 같은 혁명적 세대교체를 바라는 요구가 거세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뒤집어 보자는 생각은 더 위험하다. 캐머런은 39세에 영국 보수당 당수가 됐지만 그때 이미 17년 차 정치인이었다. ‘백마 탄 초인(超人)’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영국 보수당 시스템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내공을 쌓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캐머런이 위기의 보수당 쇄신을 위해 ‘따뜻한 보수주의’를 내걸고, “나는 (보수당의 상징인) 대처의 열렬한 팬이지만 대처리즘을 추종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수 야권은 이번 총선을 계기로 친박-비박, 탄핵 찬반이라는 해묵은 낙인찍기를 끝내야 한다. 강경 지지층만 잡으면 된다는 우물 안 생각을 과감히 떨쳐 내야 변화의 단초를 만들 수 있다. 집권을 위해선 지지층을 뛰어넘는 새 지평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지층을 설득하고 이끄는 소통 리더십도 절실하다.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제3의 길’을 가야 한다. 어렵겠지만 총선 참패가 보수 야권에 던진 분명한 메시지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