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버그/맷 매카시 지음·김미정 옮김/392쪽·1만8000원·흐름출판
‘슈퍼버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에게 생체실험을 했던 나치 의사들을 비롯해 박테리아와 인류의 싸움에 얽힌 뒷이야기를 풍부하게 풀어낸다. 사진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받는 의사들. 흐름출판 제공
주제만 보면 어렵고 무거울 것 같지만, 인간미가 뚝뚝 묻어나는 글 속에 첫 장부터 푹 빠져든다. 시작은 2014년 10월 어느 날. 흑인 정비공 잭슨이 간이침대에서 괴로운 듯 몸부림치며 저자를 찾아온다.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은 그를 검사해 보니 슈퍼버그에 감염된 상태. 맞는 약을 찾지 못해 애태우는 그에게 동료 톰 월시가 ‘달바반신’ 연구를 제안한다. 잭슨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에 그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책 제목인 ‘슈퍼버그’는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변이된 박테리아를 말한다. 미국 뉴욕 프레스비테리언 병원 의사인 저자는 이 슈퍼버그에 맞설 항생제를 상용화하기 위해 벌인 임상실험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백미는 그가 임상실험 대상자들을 만나며 털어놓은 이야기를 열거하는 부분이다. 연구 성과를 위한 수단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피험자를 대하려는 노력이 묻어난다. 자신의 실험에 응해 준 피험자들의 사연을 인간적으로 담아냈다.
그의 피험자 중에는 나치의 생체실험을 당했던 피해자도,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군으로 참여한 사람도 있었다. 두 사람이 한 병실에 모이게 된 것을 아이러니하게 생각하는 대목은 사려 깊다.
정체 모를 질병이 전국을 공포에 떨게 하는 요즘,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사람들을 생각하게도 만든다. 역사는 플레밍은 기억하지만, 시판되는 가장 값싸고 효과적인 약품 니스탄틴을 개발한 엘리자베스 헤이즌과 레이철 브라운은 기억하지 않는다.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들을 적절하게 소개하며, 명성이 아닌 사명감으로 움직인 사람들의 모습을 상세하게 스케치해 보여준다.
독서 인구가 줄어든다는 요즘, 책의 유용성은 바로 이런 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전문 분야의 일이 벌어지는 과정을 내부자가 된 듯 생생하고 명확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