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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女경무관은 독립유공자 황현숙 선생

입력 | 2019-10-23 03:00:00

1948년 치안국 여경과장 임명… 당시 본보 인사기사로 밝혀져
1919년 만세운동으로 1년간 옥고… 유관순 열사와 형무소 같은 방에




동아일보 1948년 11월 16일자 1면 ‘정부 인사 발령’ 기사에 독립유공자 황현숙 선생의 경무관 임명 소식이 실려 있다. 경찰청은 이를 통해 황 선생이 한국 첫 여성 경무관으로 재직한 사실을 확인했다. 동아일보PDF

한국 첫 여성 경무관이 독립유공자 황현숙 선생(1902∼1964·사진)이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황 선생은 3·1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와 함께 투옥됐던 것으로 알려진 독립유공자다. 71년 전 동아일보에 실린 인사 발령 기사가 황 선생의 경무관 이력을 밝히는 단초가 됐다.

경찰청은 최근 경찰 내 숨은 독립유공자의 기록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황 선생이 1948년 11월 10일 경무관으로 특채돼 내무부 치안국(현 경찰청) 여자경찰과장으로 임명되면서 최초의 여자 경무관으로 재직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종전엔 2004년 1월 경무관으로 승진한 김인옥 전 제주지방경찰청장(67)이 첫 여성 경무관으로 알려져 있었다.

황 선생이 임용됐을 때 경무관은 이사관(치안국장)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경찰 계급이었다. 현재도 경무관은 치안총감(경찰청장)과 치안정감, 치안감에 이어 네 번째로 높아 ‘경찰의 별’이라 불리는 계급이지만 당시엔 최고위 지휘부에 해당했다. 황 선생은 여자경찰과장을 맡아 1년여간 재직하며 여성과 청소년 사건을 전담 처리하는 전국 4개 여자경찰서를 총괄했다.

경찰청이 71년 만에 이런 사실을 밝혀낸 데엔 동아일보의 인사 기사가 한몫했다. 황 선생은 광복 후 이름을 ‘금순’에서 ‘현숙’으로 바꿨는데 경찰이 관리하는 여경 명단엔 개명 후의 이름만 기록돼 있었다.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독립유공 경찰 발굴 과정에서 황 선생을 찾아내지 못했던 이유다.

충남지방경찰청은 분석 대상을 넓혀 국가보훈처 공훈 사료를 뒤지던 중 황 선생의 개명 전 이름이 병기된 공적조서를 찾아냈고, 이를 토대로 문헌 조사를 벌여 1948년 11월 16일자 동아일보 1면에 게재된 ‘정부 인사 발령’ 기사에서 그가 경무관으로 임명됐던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경찰 내 사령원부와 대조해 그가 최초의 여성 경무관이었다는 사실을 확정한 것이다. 이영철 경찰청 임시정부태스크포스(TF)팀장은 “광복 전후로 많은 자료가 파손되거나 사라져 기록 확인이 어려웠는데 공신력 있는 신문의 기사가 잘 보존된 덕에 발굴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 선생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같은 달 20일 충남 천안에서 직접 만든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붙잡혀 보안법 위반죄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50년 1월 24일자 ‘부인신문’에 따르면 황 선생은 만세운동 직후 공주형무소에서 유관순 열사와 한 방에 갇혔다. 황 선생은 전북 군산 멜볼딘여학교(현 군산영광여고)에서 교원으로 재직하던 1929년에도 광주 지역 학생들의 동맹휴학 운동 배후로 지목돼 구류되자 옥중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광복 후 1945년 9월 조선여자국민당을 창당했고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백범 김구 선생 등 민족 지도자들과 함께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경찰청은 지난해부터 여성 5명을 포함해 총 55명의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을 확인했고, 앞으로도 지방경찰청에서 발굴 작업을 계속할 방침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