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드중
“미국에도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비슷한 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여러 지사 중 로스앤젤레스 사무소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럼 그 사무소가 문제지 시카고 본사에 있는 최고경영자(CEO)가 (형사처벌) 리스크를 떠안지 않아요.”
21일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하지만 한국에서는 CEO 밑에 1만 명 직원 한 명의 문제가 곧 CEO의 리스크가 된다”며 “우리도 올바른 일을 하고 싶은데 한국에서 영업 활동하는 CEO에게는 (사업주 형사처벌 법안이) 너무 큰 위험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김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개최한 좌담회에서 언급한 ‘CEO 리크스’에서 든 사례는 지난 7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다. 해당 법에 따르면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이 사실로 확인되면 △피해자의 근무지를 변경하고 △가해자를 징계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준 회사의 사업주, 즉 CEO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광고 로드중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공정거래법,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관리법 등 10개 경제 노동 환경 관련법의 357개 벌칙조항 가운데 315개(88.2%)가 법 위반 당사자뿐 아니라 사업주(대표이사·CEO)에 대한 형사처벌 근거를 두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CEO들이 두려워하는 대표적인 법안 중 하나다. 원청업체의 안전조치 소홀로 하도급업체 직원이 사망하면 원청업체 CEO가 최대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사망이 아닌 규칙 위반으로도 최대 5년 이하의 징역을 살 수 있다. 반면 미국과 독일은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에만 최대 1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고, 나머지는 과태료 수준이다.
투자 의사결정이 결국 실패로 끝나면 CEO는 배임죄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각오해야 한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어기거나 노조의 권리를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도 회사 CEO가 처벌 대상이 된다. 부당노동행위 시 CEO 형사처벌은 한국에만 있는 규정이다.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도 한국에서의 기업활동을 어렵게 하는 문제로 꼽힌다.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크리스토프 하이더만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사무총장은 “한국만의 규정이 많다”고 언급하며 “인공지능(AI), 핀테크 등 혁신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 속도는 매우 빠르다. 정부가 새로운 산업을 혼자서 자체적으로 규제 하기는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기술을 이해해야 되고 또 이해를 하고 나서 이해 당사자들과 협의를 하고 정부가 규제를 채택해야 되는데 너무 복잡하다”며 “차라리 우선 (정부가) 좀 더 국제적인 표준을 응용하고 채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산업을 일일이 규제로 대응하다보니 모빌리티, 원격의료 등 신산업 관련 투자가 어렵다는 점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