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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임무는 있는 그대로를 보도하는 것[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입력 | 2019-09-02 03:00:00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폭스뉴스가 주관한 TV 토론회에서 열변을 토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 사진 출처 액시오스 사이트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 워싱턴 특파원

워싱턴 특파원 시절 폭스뉴스는 보기 싫었습니다. 기자가 아닌 선동가 같은 진행자가 나와 팩트에 근거하지 않는 자기주장을 1시간 동안 쏟아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정말 피곤하더군요. 폭스뉴스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닮은꼴입니다. 함부로 말하고, 정적에게 맹목적인 비난을 퍼부어 대는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마냥 좋을 것만 같았던 이 둘의 관계가 틀어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들은 과거에도 수차례 싸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곧 화해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장기 대치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Fox isn’t working for us anymore.”


트럼프 대통령은 새벽 4시부터 트윗 연발탄을 날려 사람 잠 깨우는 것이 취미인데요. 얼마 전까지 민주당을 욕하는 트윗이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은 폭스뉴스를 집요하게 비판하는 트윗들로 가득합니다. 지난달 28일 폭스 관련 5개의 트윗을 날렸습니다. 미디어 전문가처럼 프로그램들을 자세히 분석하더니 다음과 같은 결론을 냅니다. “폭스는 더 이상 우리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이 말은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My job is to keep the score, not settle scores.”

전부터 둘의 사이에는 균열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자신이 보도 책임자인 것처럼 폭스 프로그램과 앵커들에 대해 수많은 참견을 해왔고, 폭스의 불만도 커져갔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트럼프의 발언에 폭스뉴스 앵커와 기자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폭스에서 3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닐 카부토 앵커의 말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있는 그대로를 보도하는 것(keep the score)이다. 상대방을 손보는 것(settle scores)이 아니다.”

△It doesn’t get more kayfabe than that.

혹시 이 둘이 짜고 ‘불화의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요. 폭스뉴스는 언론의 정도를 걷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게 할 수 있으니까요. 레슬링 용어인 ‘kayfabe’는 두 선수가 싸우지도 않으면서 싸우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폭스의 싸움만큼 그럴듯한 거짓 싸움은 없다”고 말합니다. 둘 다 그럴싸하게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