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기준의 징벌적 상속세 큰 부담… 차라리 손떼겠다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하임숙 산업1부장
어떤 글로벌 수준의 전자 소재부품 기업의 오너는 자식에게 지분 상속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때가 되면 지분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했다. 지분을 물려주자니 얼마 안 되는 현금이나 부동산을 세금으로 내야 하고, 지분을 내다 팔자니 다른 주주들에게 욕먹는 ‘무책임한 경영자’가 되겠다는 생각에 짜낸 아이디어였다. 본인 지분을 0으로 감자하면 다른 주주들의 지분이 올라가니 욕은 덜 먹고 현금자산은 챙길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상속세가 너무 세다 보니 아직 애가 어리지만 이런 편법까지 미리 생각해두는 거지요.”
실제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세계에서도 가혹할 정도로 센 편이다. 일단 상속세율은 50%이고 여기다 최대주주 할증으로 주식 지분의 30%까지 더 내야 한다(세법 개정안 국회 통과 시 내년부터는 최대 할증률이 20%로 낮아지지만 부담은 여전하다). 여기다 농어촌세까지 붙으면 지분 1억 원어치를 물려주기 위해 내야 하는 세금이 7000만 원을 넘는다.
우리가 키우고자 하는 소재부품 산업은 고부가가치라 매출액은 1조 원을 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더구나 업종, 인원, 자산에 손을 대서는 안 되니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신사업 구상도, 업황에 따른 인원 및 시설 구조조정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중소기업 사장들은 받아들인다.
이러다 보니 많은 60, 70대의 중소기업 오너가 평생 공들여 키운 회사를 ‘찌그러지게’ 만들고 자녀가 만든 새 회사를 지원해주는 방법을 고민하고 공유한다고 한다. 한 증권업계 프라이빗뱅커는 “세금을 내고 물려주고 싶어도 너무 과하다 보니 엄두가 안 나는 겁니다. 이들을 어떻게 욕만 할 수 있겠어요”라고 했다.
가업상속세에 대해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라는 관점을 넘어설 때가 됐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이 가업상속 시 기본 상속세가 우리나라보다 낮고 매출액, 종업원 수, 기업 유지 조건 등에 유연한 기준을 적용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업을 유지하는 한 상속세를 이연하는 나라도 있다. 건강한 기업이 태어나 국가에 부가가치를 보태고 고용을 창출하면 그 기업을 이어가게 하는 게 징벌적 세금으로 오너를 손떼게 만드는 것보다 낫다고 보는 것이다.
안 그래도 불황에, 승계 고민에 회사를 내놓는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이 늘고 있다. 이들과 거래가 많은 어느 금융사는 M&A 중개회사와 협약을 맺기까지 했다. 이 중개회사가 반드시 한국 기업을 매수자로 데려오리란 보장도 없지 않은가.
“세계적 수준의 소재부품 기업을 키우자는 건데, 그런 기업이 어떻게 20∼30년 만에 됩니까. 독일처럼 100∼200년 된 기업이 나오려면 조건을 만들어 줘야죠.” 한 중소기업 사장의 호소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