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아동 느는데 심리치료 저조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문예창작 동아리’ 활동을 하며 그린 그림과 창작 시. 한 피해 청소년은 ‘말 못할 비밀’이란 제목의 시를 통해 정신적 고통을 표현하기도 했다(오른쪽). 합동 작품인 ‘꿈꾸는 나무’에 쓰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우리 행복하자, 너를 위해”라는 문구에서는 함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왼쪽 위). 왼쪽 아래는 피해 아동이 그린 자화상이다.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제공
미현 양은 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두 번 정도 센터를 찾은 뒤 발길을 끊었다. 어머니가 치료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들의 성폭행 가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현 양이 피해 사실에 대해 진술하는 것도 막으면서 피해를 축소하려 했다.
성폭력 피해를 당하는 아동·청소년이 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국의 해바라기센터에 접수된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은 2016년 7505명, 2017년 8020명, 2018년 8105명이다. 하지만 전문기관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와 심리치료를 받는 피해 아동은 많지 않다. 성폭력 피해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 부모들이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현 양의 사례처럼 친족 간에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심리치료를 받는 경우는 더욱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홍민하 경기북서부해바라기센터 소장은 “부모들이 치료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친족에 의한 피해일 경우 가족 내 문제로 ‘집안 망신’시키지 말자며 아이가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정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부소장도 “성폭력 피해 아동들은 대부분 PTSD 진단을 받는다”라며 “치료 시기를 놓치면 주변의 상황에 극도로 예민해지는 각성 상태가 심해지고 환청이나 이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일 광주 남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발생한 모녀 성폭행 미수 사건의 피해 아동 A 양(8)도 아직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A 양의 어머니는 “딸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아직도 부들부들 떨면서 운다. 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전화를 하면 ‘이사 가자’는 말만 한다”며 “딸이 범인이 침입했던 단칸방에서는 악몽이 되살아나 살 수 없다고 해 조만간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