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바다 위 방랑자’, 1818년.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그린 이 그림은 대자연을 마주한 고독한 여행자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풍경화는 편안한 감상보다는 궁금증과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그림 속 남자는 전사한 독일군 장교나 평범한 기독교인의 상징으로 해석되지만, 화가의 자화상이란 주장도 있다. 사실 모델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프리드리히는 익명성과 보편성을 부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인물의 뒷모습을 자주 그렸기 때문이다.
남자는 지금 가파른 바위산 정상에 올라 숭고하고 경이로운 광경을 응시한다. 화가는 그의 뒷모습을 전경에 배치해 감상자도 같은 풍경에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그림 속 배경은 독일과 체코 사이의 엘베사암 산맥으로, 전쟁으로 집을 떠나 지내던 화가가 여행 중에 무작정 오른 산이었다.
천상병 시인은 인생을 소풍이라 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의 시 ‘귀천’의 마지막 부분이다. 우리도 소풍을 끝내는 날, 저 방랑자처럼 정상에 홀로 서면 아름다운 소풍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