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세계 마약 퇴치의 날… 의료용 마약류 현장점검 동행
21일 서울 강남구 A성형외과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관리과 ‘마약류 현장대응 TF팀’ 소속 직원들이 프로포폴 등 의료용 마약류 보관 상태와 재고량을 점검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프로포폴 많이 쓰는 병원 불시 점검
“식약처에서 나왔습니다.” 21일 오전 10시 식약처 마약관리과 ‘마약류 현장대응 태스크포스(TF)팀’ 소속 김지원 주무관은 동료 직원과 함께 서울 강남구 A성형외과를 찾았다. 안내데스크 직원들은 예고 없는 방문에 어리둥절해했다. 한 직원은 진료를 위해 온 줄 알고 “예약했느냐”고 묻기도 했다.
A성형외과 원장은 “아마 우리 병원이 수면 마취 시간이 긴 시술을 많이 하는 편이라 프로포폴 사용량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장과의 짧은 면담을 마친 현장대응 TF 팀원들은 먼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상 처방 내역과 병원에서 보관 중인 각종 마약류 관련 서류가 일치하는지부터 확인했다.
이 병원에서 사용하는 프로포폴 주사액 한 병 용량은 20mL인데 서류마다 기재된 프로포폴 사용량 단위가 제각각이었다. 팀원들은 혹시 기록에 누락된 프로포폴이 없는지 따지기 위해 병의 개수와 용량을 일일이 확인했다.
이들은 환자 진료기록도 꼼꼼히 살폈다. 프로포폴은 환자 체중 1kg당 1.5∼2.5mg을 투여해야 한다. 하지만 환자 체중만으로 프로포폴 투여량이 적절했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용도로 썼는지, 마취 지속시간이 얼마나 됐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환자 진료기록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환자가 수술을 취소하면 이미 처방한 마약류는 어떻게 처리하나요?” 서류를 살피던 김 주무관이 병원 내 마약류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물었다. 갑자기 수술을 취소해 처방해놓고 사용하지 않은 마약류가 있다면 폐기해야 한다. 혹시 이런 마약류가 유출된 건 아닌지 점검한 것이다.
○ 빅데이터 감시망으로 실시간 모니터링
이처럼 의료용 마약류 관리감독이 촘촘해진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지난해 5월 이전까지만 해도 제약사와 유통업자, 약국, 의료기관 등은 의료용 마약류를 제조하거나 판매, 처방한 내역을 수기로 작성했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마약류를 얼마나 처방했는지 확인하려면 직접 의료기관을 방문해야만 했다.
문제는 5만7000여 개에 이르는 전국 의료기관을 일일이 방문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마약류 오남용이 의심된다는 제보가 들어와도 관할 보건소에서 현장 점검을 전담하다 보니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처럼 관리감독이 느슨했던 탓에 마약류 오남용이나 불법 유출 사례가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온 것이다.
실제 지난해 10∼12월 사망자 명의로 의료용 마약류를 불법 처방받은 환자와 의사 등 28명이 빅데이터 감시망을 통해 적발됐다. 식약처는 올 4월에도 처방전을 위조하거나 하루 3곳 이상의 의료기관을 돌며 마약류를 투약받는 환자 49명을 적발해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김 주무관은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의료기관에서는 보고 업무가 늘어 불편하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하는데, 마약류 오남용을 차단하려면 꼭 필요한 일이니 적극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식약처는 이날 서울 중구에서 ‘제33회 세계 마약 퇴치의 날 기념행사’를 열고 마약류사범 재활프로그램 교본을 만든 약사 이철희 씨 등 마약 관련 유공자 42명에게 훈장 및 표창을 수여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