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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이유종]캐릭터 하나 띄웠더니 지역 경제가 살아났다

입력 | 2019-04-24 03:00:00


일본 구마모토현 캐릭터 ‘구마몬’이 사람들과 흥미로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구마몬은 지난해 1조 5000억 원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 사진 출처 아사히신문


이유종 국제부 차장

지난달 19일 일본의 한 캐릭터가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배불뚝이 흑곰 스타일의 이 캐릭터는 본명 이외에도 중국인이 쉽게 부르도록 닉네임까지 만들었다고 밝혔다. 닉네임은 슝번슝(熊本熊). 그동안 쿠마멩 등 여러 현지 닉네임을 지었지만 입에 착 달라붙지 않았단다. 상표등록도 마쳤다. 헬로키티, 도라에몽, 포켓몬스터보다 자신이 더 인기가 높다고 넉살을 떤다. 이 캐릭터는 민간 기업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가 만들었다. 얼핏 ‘관급’ 냄새가 물씬 풍길 것 같은데 별로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조 단위의 부가가치 창출까지 했다. 구마모토(熊本)현의 귀염둥이 ‘구마몬’은 특별한 성공 비결을 갖고 있다.

구마몬은 곰을 뜻하는 일본어 ‘구마(熊)’와 사람을 뜻하는 지역 사투리 ‘몬’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다. 구마모토현은 인구 180만 명 정도로 농업, 수산업이 발달했지만 크게 주목받는 곳은 아니었다. 2011년 규슈 신칸센이 전면 개통되면서 열차를 갈아타지 않고 직행으로 오사카에서 구마모토까지 3시간이면 올 수 있게 됐다. 구마모토현 공무원들은 100년에 한 번 찾아올 만한 기회라고 판단했다. 기차를 타고 올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 경제에 기여할 방법을 모색했다. 일단 구마모토라는 이름부터 쉽게 떠올리도록 홍보하기로 했다.

구마모토현은 예산이 빠듯해 광고, 마케팅에 홍보비를 많이 투입할 처지는 아니다. 그래서 지역을 상징할 캐릭터 개발에 집중했다. 보통 지자체의 캐릭터는 지역 특성, 특산물 등을 반영해 제작한다. 구마모토현은 발상을 전환했다. 지역 특성을 캐릭터에 최대한 반영하기보다 사람들이 캐릭터 자체에 흥미를 느끼도록 했다. 캐릭터가 알려지면 지역을 자연스럽게 홍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지역과의 연관성은 부족하지만 누구나 친근함을 느낄 만한 흑곰으로 캐릭터를 완성했다.

구마몬 캐릭터가 만들어지자 행사장, 야구장의 입간판 등으로 자주 노출시켰다. 특히 잠재 고객이 주로 거주하는 오사카 일대가 집중 공략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귀엽지만 뜬금없이 등장하는 캐릭터에 궁금증과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에도 진출해 젊은층 휴대전화 바탕화면을 서서히 점령했다. 구마몬 블로그에선 구마모토가 아닌 오사카를 홍보했다. 이웃 지방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의 지역을 홍보하면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 결과 구마몬은 탄생 1년 반 만에 일본 최고 마스코트에 뽑혔다.

캐릭터를 사용하려는 기업, 기관, 단체 등이 늘자 이를 무료로 빌려줬다. 그 대신 거래를 했다. 식품회사, 편의점 등이 구마몬을 사용하면 구마모토현의 농산물, 제품 등을 판매해달라고 요청했다. 구마몬이 부착된 상품들은 자연스럽게 캐릭터 자체를 홍보했다. 경제 효과는 놀라웠다. 지난해 관련 상품 매출은 1500억 엔(약 1조5231억 원)에 달했다. 과자 등 식품 매출이 1242억 엔(약 1조2612억 원), 인형 등 캐릭터 상품은 244억7000만 엔(약 2484억 원)을 넘었다.

그렇게 구마몬은 공무원 조직 문화마저도 바꿨다. 이들은 구마몬을 통해 영업을 배웠다. 한 공무원은 민간기업과 지역 항구를 이용한 물류사업 협력을 추진할 때 문전박대마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강심장을 갖게 됐다고 털어놨다. 사일로 효과(부서 이기주의)도 줄었다. 여러 부서가 협력하다 보니 협업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구마모토현 브랜드추진과 공무원은 여전히 구마몬 인형 탈을 쓰고 각종 행사장을 찾는다. 인공지능(AI) 등과 접목해 대중이 더 쉽게 자주 구마몬을 사용할 수 있도록 미래 전략도 짜고 있다.

꽤나 많은 한국 중앙 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도 친근한 이미지로 정책을 홍보하려고 공공 캐릭터를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방치되고 있다. 2008년 서울의 캐릭터로 출범한 ‘해치’는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캐릭터는 아니다. 국내 공공 캐릭터는 기관장 교체 등 잦은 외풍으로 사후 관리가 엉망일 때도 많다. 이야깃거리까지 갖춰서 대중의 흥미를 자극한 사례도 찾기 어렵다. 사랑받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경제에 기여하며 해외까지 진출하는 공공 캐릭터 하나쯤은 나와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유종 국제부 차장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