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논설위원
이 같은 합의를 두고 협상을 중재해온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택시·카풀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은 택시와 카풀업계가 상생하는 모델이라고 자평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대화와 양보를 통해 첨예한 갈등을 해결한 아름다운 선례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의 의견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이해당사자는 구사업자인 택시업계, 신사업자인 카풀업체 그리고 국민 대다수인 이용자 등 크게 세 그룹이다. 엊그제 서울 경기 전체 택시 10만여 대 가운데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서울시개인택시조합이 합의안을 전면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오전 오후로 제한된 2시간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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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다수 이용자의 소리 없는 불만이다. 이들의 소망은 단순하다. 출퇴근 시간이든 심야든 택시 잡느라 이리저리 안 뛰어다니고, 어렵게 잡았는데 승차 거부당하는 일 없고, 친절한 차를 타고 싶다는 것이다. 타협안에는 이런 요청이 반영돼 있지 않다. 이용자를 대변해야 할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책임이 크다.
며칠 전 자율주행차가 일반 차량들 틈에 섞여 서울 강변북로∼올림픽대로를 거쳐 서울숲 주차장까지 8km를 25분 동안 달렸다. 인공지능(AI) 발전과 5세대(5G) 통신으로 자율주행차는 기술적으로는 이미 거의 완성됐고 제도적인 문제만 남아있다. 카풀, 택시 가릴 것 없이 운전자 자체가 사라질 판이다. 그때 가서도 카풀의 전면적 영업 행위를 저지한 것처럼 자율주행차 영업 행위를 실력행사로 막고 나설 것인가. 이미 재작년 봄에 세계적인 AI 권위자인 미 스탠퍼드대 제리 캐플런 교수로부터 “나의 다른 예측은 모두 틀릴 수 있지만 10년 내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되리라는 전망은 내기를 해도 좋다”며 “직업의 사회적 변화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번 택시·카풀 대타협은 3가지를 보여주었다. 규제 완화의 어려움, 사회적 대타협의 허울 좋은 명분, 그리고 또 하나는 정부의 무능이다. 대체로 규제 완화의 예외 조항으로 생명 안전 환경을 들고 있다. 이번 카풀·택시업계 갈등에서 보듯이 이해관계는 이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막강하다. 생계가 걸려 있어 비난만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사회적 대타협이 사회 흐름에 역행하는 봉합, 때로는 정작 중요한 당사자인 다수 국민을 뺀 야합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지지 않게 나라를 앞으로 끌고 나가는 게 정부의 능력이자 책임이다. 그런데 규제의 ‘붉은 깃발’을 없애겠다는 정부가 이해당사자들에게 막혀 더 만들고 있으니 갑갑한 노릇이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