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탈모 증세를 보이는 한 회사원이 인터넷으로 탈모 방지 효과가 높다고 광고하는 제품들을 찾아보고 있다. 대한모발학회 제공
원형탈모 환자 A 씨(32)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A 씨는 2014년 가을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뽑히기 시작하더니 1년도 지나지 않아 머리카락이 완전히 빠졌다. 연애는커녕 오랜 친구와의 만남도 꺼려졌다. 사람을 피하다 보니 우울증이 생겨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 적도 있다. 지난해 말부터는 수도권의 한 병원에서 월 100만 원을 내고 무허가 치료를 받고 있다. 의사가 결핵 등 각종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A 씨의 뜻은 확고했다.
○ 봄과 미세먼지가 두려운 원형탈모 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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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원형탈모로 병·의원을 찾은 국내 환자는 2017년 16만5704명이었다. 남성이 8만9823명으로 여성(7만5881명)보다 더 많다. 2013년 15만4249명에 비해 7.4% 증가하는 등 원형탈모 환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 ‘불법 처방’ 음지로 숨어들어
중증 원형탈모 환자들이 더욱 절망하는 이유는 치료법이 마땅치 않아서다. 시중에 사이클로스포린 성분의 면역 억제제가 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낭 주위의 염증을 줄이기 위한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법은 성장 장애 등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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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제품들이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 목적으로만 허가됐을 뿐 원형탈모 치료용으로는 허가가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핵 등 감염병에 취약해지는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보건 당국은 올해 1월 “별도 허가가 나기 전까지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를 원형탈모 치료용으로 사용하지 말라”고 일선 병·의원에 권고했다. 이를 어기면 의료비 환수 등 제재가 가해진다.
당연히 건강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지만 적잖은 원형탈모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약을 ‘불법 처방’해 주는 의사들을 찾아다닌다. 인지도가 높은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는 한 알에 1만3000∼1만5000원에 이른다. 원형탈모 치료에 효과를 보려면 이 약을 하루 두 알씩 매일 먹어야 한다. 한 달 약값만 100만 원 가까이 드는 것이다.
○ “가발비 지원이라도…” 애타는 호소
의료계에선 수년 내에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가 원형탈모 치료용으로 허가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효능 좋은 약이 정식 출시되더라도 원형탈모 증상이 나타난 지 10년이 넘은 환자에겐 효과가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선 기존 치료제와 더불어 레이저 치료 정도가 원형탈모 치료의 대안으로 꼽힌다. 일부에선 줄기세포 등을 두피나 정맥에 투여하는 이른바 ‘면역주사’ 치료를 시행하고 있지만 그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의료계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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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도 증상이 낫지 않고 재발이 반복되면 좌절하기 쉬운데, 무엇보다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