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GNI 작년 3만1349달러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마침내 3만 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6·25전쟁 직후 대외 원조를 받던 최빈국에서 불과 약 70년 만에 당당하게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선 신화를 쓴 것이다. 하지만 숫자와 달리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싸늘하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저출산과 저성장, 고용과 소득의 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그 다음 단계인 ‘4만 달러 시대’를 맞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 12년 만에 3만 달러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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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GNI 3만 달러’는 통상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017년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넘는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3개뿐이다. 특히 한국은 인구가 5000만 명 이상인 국가 중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넘어선 ‘30-50 클럽’에도 7번째로 가입하게 됐다. 기존 6개국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다.
한국의 1인당 GNI는 1963년 100달러, 1977년 1000달러를 넘어선 뒤 1994년 1만 달러를 돌파했다. 2006년에 2만 달러 고지를 밟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3만 달러를 넘기까지 12년이 걸렸다. 미국은 1인당 GNI가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가 되기까지 9년, 독일과 일본은 5년이 걸렸다.
○ 3만 달러 시대라는데, 아직 기분은…
하지만 많은 국민에게 ‘3만 달러’는 그저 숫자에 그칠 뿐이다. 열대어 및 수족관 자재 수입업을 하는 한문표 씨(38)는 “최근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사업이 위축돼 미래에 대한 장밋빛 기대도 접은 지 오래”라며 “예전엔 내가 노력하면 얼마든지 돈도 벌고 성공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지금은 뭔가 막막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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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경기를 반영하는 명목 GDP 성장률도 지난해 3.0% 증가하는 데 그쳤다. 1998년(―1.1%) 이후 20년 만에 최저치다. 2만 달러를 달성한 2006년 당시 80 선을 유지했던 전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지난해에는 70 선으로 떨어졌다. 가계뿐 아니라 기업도 체감경기를 나쁘게 본다는 얘기다. 경제 성장 속도도 크게 줄었다. 지난해 한국의 성장률은 2.7%로, 2006년(5.0%)의 절반 수준이다.
▼ 전문가 “4만달러 넘으려면 규제개혁 등 시급” ▼
지난해 수출증가율도 4.2%로 2006년(14.6%)보다 훨씬 낮다. 다만 이런 외형적인 성장 속도는 경제 규모가 커지면 느려지는 게 일반적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은 국가들이 모두 4만 달러 대열에 안착한 것은 아니다. 한은 관계자는 “일본 프랑스 영국은 자국 통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비교적 짧은 기간인 2, 3년 만에 4만 달러에 진입했지만, 경기가 둔화되면서 2017년 현재 1인당 GNI가 3만 달러 후반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은 2007년 3만 달러 문턱을 넘었지만 2017년 1인당 GNI가 2만 달러 후반으로 쪼그라들었다.
한은은 물가와 환율, 인구 등 다른 요인을 배제하고 성장률이 2%대 중반을 유지한다면 4만 달러 고지까지 가는 데 10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쉽지 않은 과제다. 4만 달러 고지에 도달한 국가들은 성장과 고용, 수출과 내수,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경제의 각 부문이 모두 균형 있게 발전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고령화와 저출산 등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면서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규제 개혁 등 구조적 문제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강유현 yhkang@donga.com / 세종=최혜령·송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