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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명건]양승태 구속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입력 | 2019-01-22 03:00:00


이명건 사회부장

내일 법원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최근 기자회견 메시지는 7개월 전과 똑같았다. 재판 개입 및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는 자세를 한 치도 바꾸지 않았다.

그는 11일 검찰 소환 직전 취재진 앞에서 “법관들이 법과 양심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하고 저는 그 말을 믿고 있다”며 “그 사람들에게 과오가 있다고 밝혀진다면 제 책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의혹에 관여하지 않은 게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해 6월 1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뭔가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는 지적이 있었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이 지면 칼럼을 통해 그의 발언을 이렇게 분석했다.

법조인은 대개 용어에 민감하고 엄격하다. 판결문을 쓰는 판사들은 특히 더 그렇다. 양 전 대법원장의 핵심 메시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이다. 애매한 용어로 피해간 것이다.

이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사유 전제와 일맥상통한다. ‘‘모른다’ 혐의 전면 부인→증거 인멸 우려→구속 불가피’가 검찰의 논리다. 검찰 관계자는 “‘나는 잘 모르겠다’는 건 밑에 판사들이 스스로 알아서 재판에 개입하고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따라서 양 전 대법원장 지시로 ‘법관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거나, 그의 일제 강제징용 소송 지연 개입을 알았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전·현직 판사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구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재판에서 진술 번복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목적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판사들은 “전직 대법원장이 도주할 리는 없고, 증거 자료가 다수 수집돼 있는데 굳이 구속할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한다. 지난해 12월 박병대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와 같다. 당시 법원은 그 전에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윗선으로는 구속 대상을 확대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는 분석이 있다. 임 전 차장의 영장 범죄사실이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 전 대법관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종 결정권자’로 검찰이 지목한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 역시 기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선진 문명국가에서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을 지낸 사람이 재판 업무와 관련해 구속된 적이 있나. 만약 구속되면 국제적인 망신”이라고 말하는 판사도 있다.

그런데 사법부엔 ‘나는 잘 모른다’에 반감을 가진 판사들도 많다. 소장파뿐 아니라 수뇌부도 그렇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양 전 대법원장의 첫 기자회견 직후 전국의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소신 있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사찰과 통제 대상이 됐던 법관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또 두 번째 기자회견 1시간 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취임사를 통해 “우리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잘못에 대해 진정으로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였습니까?”라고 했다. ‘나는 잘 모른다’를 사실상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구속에 찬성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구속은 그저 수사 수단이고 재판 절차일 뿐이다. 구속이 되건 안 되건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은 조만간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된다. 이른바 ‘사법농단’ 실체가 판가름 나야 하는 재판이다. 검찰 수사 200여 일보다 훨씬 오래 이어질 것이다.

그 법정에서 검찰은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 피고인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않을까. 사법은 사법농단을 객관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재판이 다 끝나고 나서도 화염병을 대법원장 차량에 던진, 대법원에서 목을 맨 심정을 ‘나는 잘 모른다’고 할 수 있게 될까. 그게 구속 여부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