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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동인의 業]〈12〉실업, 죽음 같은 새 출발

입력 | 2018-12-14 03:00:00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

기업들의 연말 승진 인사가 한창 발표되고 있다. 좋은 성과에 대한 보상이다. 하지만 승진된 숫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날 옷을 벗는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그 비율이 더 심하다. 발표 직전 해임을 통보받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하루아침에, 난데없이 실업자가 되는 셈이다.

해임보다는 낫겠지만 승진 대상에서 누락된 사람도 허탈하긴 마찬가지다. ‘황무지 증후군(after downsizing desertification syndrome)’이라는, 이른바 ‘남은 자 증후군’이다. 구조조정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직장인들이 겪는 일종의 신경정신병 증상이다. 실업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격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처음 겪었던 대량 실업은 잠시 지나가는 태풍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이후 경쟁력이 약해진 기업은 늘 구조조정을 반복해야 하는 탓에 지금은 ‘누구나, 항상’ 실업에 노출되어 있다. 중간관리자는 물론이고 청년들도 예외가 아니다.

실업은 죽음에 버금가는 충격이다. 실업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체로 자식, 배우자, 부모의 사망에 이어 4번째로 아프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문제도 크지만 사회와의 급격한 단절은 상상을 뛰어넘는 고통이다. 경험 없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아픔이다. 나이가 들수록, 실업 상태가 길어질수록 실업 탈출 확률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다.

방법이 있을까. 일자리가 갑자기 늘어나지 않는 한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동안 우리는 대략 일생의 절반 가까이를 그 이후 생을 준비하는 데 사용했다. 평균 수명 60세이던 시절엔 20대 후반까지 뭔가를 준비했다. 의학과 생명공학의 발달로 앞으로 평균 수명이 100세를 넘어 120세, 150세에 이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제 50, 60대는 일을 마무리할 시기가 아니라 남은 절반 이상의 삶을 위해 뭔가 준비할 시기인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생 상담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마지막 문구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 같습니다. 목적지를 정하려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 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재취업, 창업, 귀촌 등 실업 극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정책 당국이 쏟아붓는 예산도 상당하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대부분 정보 제공이나 기술기능 교육에 치우친 탓이다. 죽음 같은 충격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필요한데, 이 부분을 고려한 프로그램들은 취약하다. 마음만 안정되면 더 이상 실업자가 아니다. 운동 경기에서 교체타임을 기다리는 후보 선수처럼 언제나 ‘준비된 자세’를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