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끄지 피살 면죄부 정당화… 감산 검토 사우디 어르고 달래 폼페이오 “가장 성실한 동맹” 맞장구 시장선 “트럼프-사우디 역할 아닌 경기둔화 등 복합요인에 유가 하락” 초저유가, 석유산업 위협 우려도… 빈 살만 왕세자, 중동 4개국 순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둔 21일 트위터에 “사우디아라비아에 감사를 보낸다”며 이 같은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저유가’와 ‘사우디 역할론’을 강조한 건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는 사우디 왕실을 두둔한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고, 저유가를 경제 치적으로 내세우려는 복합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이날 캔자스주 위치토 지역 라디오방송 KQAM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세계 최대 테러 지원집단에 맞서 싸우는 미국의 가장 성실한 동맹”이라고 치켜세웠다.
○ 트럼프, 증시 실적 저조하자 유가 카드 내밀어
시장에선 유가 급락을 트럼프 대통령과 사우디의 역할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CNN은 최근의 유가 급락에 대해 △미국의 이란 제재 영향 과대평가 △미국산 셰일가스 붐 △세계 경기 둔화, 미중 무역전쟁 등에 따른 수요 둔화 우려 △증시 혼란 △원유시장 핫머니 유입 및 이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유가 향방은 다음 달 초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국가 회의에서 감산 논의가 어느 정도로 진행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데이미언 쿠르발랭 골드만삭스 에너지분석 책임자는 “최근 유가는 시장의 수급 여건에 비해 과도하게 하락했지만 OPEC가 조치를 내놓거나 수요 성장세가 탄력적이라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하락 폭 계속 커지면 트럼프도 마냥 반길 순 없어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원유와 가스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7.6%를 차지하고 있다. 유가가 떨어지면 소비자 부담과 금리 인상 압력이 줄어든다. 하락 폭이 어느 선을 넘어 크게 확대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텍사스, 노스다코타, 오클라호마주 등의 석유산업 종사자들이 2016년 초 저유가 위기 때처럼 일자리를 잃는 일이 재연된다면 트럼프 대통령도 지금처럼 유가 하락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미국의 대형 석유회사인 셰브론과 엑손은 올 들어 주가가 10% 하락했고 중소 회사들 주가는 20∼30% 떨어졌다. RBC캐피털마켓의 마이클 트랜 글로벌에너지전략책임자는 “유가 하락이 어느 선에서 미국 석유회사에 피해를 주기 시작할 것”이라며 “원유와 가스산업 종사자 상당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이라고 지적했다.
카슈끄지가 살해된 후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해외 순방과 국제행사 참석 등을 준비하며 조금씩 분위기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그가 사건의 배후라는 것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를 밝혀내지 못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20일 “사우디는 변함없는 동반자”라며 사실상 면죄부를 줬기 때문이다. 중동 현지 언론에 따르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23일부터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튀니지 등 4개국 순방에 나설 예정이다. 카슈끄지 피살 사건 발생 후 첫 해외 일정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다음 달 1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