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스트맨’이 미국의 영웅 닐 암스트롱을 소재로 택한 것은 정치적으로 읽힌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국가와 개인 사이를 줄타기하며 오스카를 겨냥한다. UPI 제공
그러나 그 순간의 이면을 뒤집어 차분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실패와 희생, 죽음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발로 툭 건드리면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위태롭다. ‘라라랜드’, ‘위플래쉬’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데이미언 셔젤의 새 영화 ‘퍼스트맨’은 이런 이면을 알고 있었던 사람, 닐 암스트롱(1930∼2012)의 지독한 외로움과 슬픔을 그린다.
○ 인간 ‘닐’의 고독과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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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슬픔을 강요하진 않지만, 예상치 못한 장면 전환으로 우울함을 극대화한다. 닐이 침대에서 카렌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행복해하는 찰나, 갑자기 화면은 바뀌고 검은 상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암 투병을 했던 카렌의 장례식이다. 창밖에선 어린 아들이 뛰어놀고 닐은 홀로 슬픔을 삼킨다. 그리고 카메라는 다시 비어 있는 아기 침대를 비춘다. 가장 행복한 순간과 가장 슬픈 순간을 곧바로 이은 지독한 장면. 헤밍웨이가 썼다는 가장 슬픈 문장이 떠오른다.
“팝니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아기 신발.”
○ 나약하고 위태로운 도전의 기록
‘라라랜드’에서 주연을 맡은 데 이어 ‘퍼스트맨’에서 닐 암스트롱을 연기한 배우 라이언 고슬링. UPI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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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거리의 성난 사람들의 구호가 겹쳐진다.
“이만한 희생과 비용을 치를 가치가 있는 일인가!”
○ 위대했던 미국에 관한 우울한 향수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는 미국이 가장 화려하게 꽃피던 시기다. 그런데 영화에서 밝은 햇빛이 비치는 장면은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노는 때밖에 없다. 나머지 대부분은 어두운 밤 실내조명 하나에 의지하거나, 커튼을 쳐서 푸르스름한 빛이 실내로 비치곤 한다. 세계가 미국을 바라봤던 그 순간을 왜 어둡게 그리고 있을까. 아마도 과거의 영광이 어디로 갔는지 우울하게 돌아보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가 공개되자 닐 암스트롱이 발을 딛는 순간 달에 꽂았다는 성조기가 생략됐다며 정치적 논란이 일어났다. 영화는 불안한 현재의 관점에서 화려했던 과거의 미국을 정교하게 곱씹으며 비트는 방식을 통해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영악하게’ 정조준하고 있는 듯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