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향한 장관의 90도 인사… ‘충성맹세’ 연상, 보는 사람 더 창피 靑 권위주의, 내각 여당과 관계 왜곡… 참모들부터 경계하고 忠言해야 제자리 맞는 사회적 권위 필요하나… 권위주의 변질되면 미래로 못 나아가
박제균 논설실장
처음엔 왜 굳이 반말 같은 호칭을 해야 하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지금부터 30년쯤 전의 일이란 점을 감안하길 바란다. 그러나 취재현장에 나가면서 그런 호칭에도 나름의 ‘깊은 뜻’이 있음을 알게 됐다. ‘님’ 자 하나 뺀 것뿐인데, 격의 없는 내부 소통을 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당시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보다 수평적인 언론사 문화가 나이 많고, 성공한 취재원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다가가는 데 큰 힘이 됐던 게 사실이다. 호칭이나 예절 같은 형식은 때론 인간관계라는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님’ 자는 고사하고 부장 차장이란 직책까지 생략한 호칭이 등장하는, 이른바 탈(脫)권위 시대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 대통령이 청와대 관계자들과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산책하며 담소하는 사진으로 탈권위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하지만 탈권위 정부에도 권위주의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장관의 90도 인사에 청와대 참모들은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불편하고 씁쓸했다. 장관이 대통령에게 충분한 예의를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과 장관은 주군(主君)과 가신(家臣)의 관계가 아니며 장관이 궁극적으로 충성해야 하는 대상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조폭의 충성맹세를 연상케 하는, 예법에도 없는 90도 인사를 보면서 아직도 우리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진정한 청와대 참모들이면 그런 시대착오적인 인사가 대통령의 이미지에 미칠 악영향을 경계하고 충언을 했어야 한다.
지난달 인도 삼성전자 신공장 준공식에서 문 대통령을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90도 인사를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삼성을 겨냥한 정권의 압박이 조여 가는 터에 젊은 총수가 연장자 대통령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깊이 머리를 숙이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런 게 당연시되는 문화는 곤란하다. 현 정권을 포함해 우리의 역대 정권은 집권 초 정부와 기업을 수직적 관계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정부와 기업은 상하관계가 아니다. 경제의 동반자인 수평관계다.
비단 정권만의 문제도 아니다. 어떤 정치인들은 당 대표가 됐다고, 혹은 원내대표가 됐다고 신임 인사 자리에서 ‘앞으로 잘 모시겠다’며 90도 인사를 한다. 그리고 잘 모시기는커녕 도리어 무시하고 극한 대립을 자행해온 것이 우리 정치판의 현실이다.
악수란 원래 꼿꼿이 서서 눈을 맞추며 하는 것이 예법에 맞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똑바로 서서 악수해 ‘꼿꼿 장수’ 별명을 얻었지만, 실은 그렇게 안 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다. 정, 어른에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악수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목례 정도는 무방할 터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권위마저 무시되는 요즘이다. 사회 구성원과 기관 각각의 자리에 맞는 권위는 필요하고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권위가 변질된 권위주의가 숙변처럼 들어차 있는 한 미래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